HOME > 학술 이야기 > 이덕일의 역사특강
《조선왕조실록》을 보다가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다.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즉위하자 노론에서는 경종 암살작전에 들어간다. 노론 명가 자제들이 독약을 사용해 임금을 죽이려는 ‘소급수(小急手)’를 실천했다. 이 와중에 정권이 바뀌면서 이에 가담했던 목호룡이 고변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경종 즉위년(1720) 12월 15일 역관 장씨가 청나라에서 사온 독약을 환관 장세상이 수라간의 김상궁에게 막대한 은화와 함께 주었고, 김상궁이 이를 임금의 음식에 넣었다. 이때 경종이 곧바로 구토하지 않았으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독살이 실패하자 노론 자제들은 “맹독(猛毒)이 아니었으니 다음에는 더 센 약을 사와야겠다”면서 독살 계획을 계속 추진하다가 목호룡의 고변으로 체포되었다.
수사 도중 영의정 김창칩의 손자 김성행이 우홍채에게, “노론은 천지와 더불어 무궁한 길이 있다〔老論有與天地無窮之道〕”라고 말하면서 환관 장세상의 집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종은 이때는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재위 4년만인 1724년 결국 독살 당함으로써 세상은 다시 노론 천지로 돌아갔으니 김성행의 말이 허언은 아니었다. 내가 《조선왕독살사건》을 쓴 것은 단순한 호사 취미가 아니라 노론이라는 정치집단의 권력 유지 행태를 국왕독살이라는 코드로 풀어본 것이었다.
문제는 김성행이 우홍채에게 한 말이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의 하나라는 점이다. 마지막 노론 당수 이완용이 팔아먹은 나라를 순국선열들의 삶과 애국지사들의 피눈물로 되찾았지만 해방 후 세상은 다시 노론 천지가 되었다. 그리고 노론 권력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 역시 이 카르텔에 의한 것으로 나는 보고 있다. 특히 학문과 언론권력의 상당 부분을 장악한 노론의 정신적 후예들은 때로는 보수의 옷을 입고, 때로는 진보의 옷을 입고 나타나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킨다. 식민사관, 즉 조선총독부 사관 옹호에 일부 보수와 일부 진보가 한 몸이 되어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역사관을 공격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희한한 현상이 그 중요한 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이제 이런 카르텔의 실체를 인식하고 있는 개인 지식인들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학벌에 관계 없이 진영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진정한 지식인인데, 이들이 좌우 언론 카르텔에 맞서 지난 대통령 선거가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게 막은 방파제였고, 지금은 여러 가면을 쓴 사이비 지식인들의 사기행각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땅을 치며 후회했던, 지난 9년 세월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내재적인 힘, 즉 역사의 시계추가 거꾸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아낼 수 있는 근본적인 힘 역시 나는 개인들이 스스로 모여 집단으로 등장한 ‘개인 지식인’들에게 있다고 본다. 희망이 있으면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