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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9월 13일 - 초대부통령 이시영 선생의 역사관 (1) 등록일 2017.09.27 22:12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1103
-『감시만어』라는 역사서

우리나라 사람 중에 『감시만어(感時漫語)』라는 책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감시만어』는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대통령 이승만과 함께 부통령에 당선되었던 성재 이시영(李始榮:1869~1953) 선생의 저서다. 이시영 선생이 이 책을 쓴 이유는 상해 임시정부가 항주(抗州)를 거쳐 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까지 피난했을 때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중국인 황염배(黃炎培:1878~1965)가 1933년 쓴 『조선』이란 책을 보게 된 것이다. 황염배는 나중 중국공산당 시절 부총리를 역임하는데, 한때 일본에 유학했던 관계로 한국사에 대해 아주 그릇된 관점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을 보고 분개한 이시영 선생이 쓴 『감시만어』의 그 부제가 ‘황염배의 잘못된 한국사관을 논박한다’는 것이다. 황염배가 일제 식민사관에 물들어 한국사를 비하하는 것을 논박한 것이다.

-이시영의 역사관

내가 『감시만어』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일반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셨던 백암 박은식 선생이나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내각 수반)이셨던 석주 이상룡 선생, 그리고 단재 신채호 선생 등은 자타가 공인하는 역사학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시영 선생은 대한제국 말기에 지금으로 치면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라 할 한성재판소장을 역임한 법조인이란 인식이 강했지 역사학자란 인식이 강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성재 이시영 선생의 『감시만어』는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과 그 수준을 알 수 있는 전범이 될 수 있다. 우당 이회영의 친동생이었던 이시영은 십대 때 이상설, 이회영 등과 신흥사(新興寺)에서 같이 합숙하면서 공부했던 사이였다. 그래서 그의 역사관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항일지사들의 공통적 역사관이라고 봐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독립운동가의 역사관

그러나 해방 후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계속 배워 온 우리들의 시각으로 『감시만어』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어른들이 평생 독립전쟁에 투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이런 역사관 때문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절강성 가흥에 한국사에 관한 사료가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는가? 1932년 4월 29일 일왕 히로히도의 생일축하 행사장에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거사로 급히 도주하던 임정 요인들이 사료를 챙겼으면 얼마나 챙겨서 가흥까지 가져왔겠는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여순(旅順) 감옥에서 기억력에 의지해 『조선상고문화사』를 저술한 것처럼 가흥에서 저술한 『감시만어』도 때로는 사료를 인용하고 때로는 과거 공부했던 기억력에 의지해 서술했는데, 그 내용이 방대하다.

-단군조선의 강역과 낙랑군의 위치

이시영은 먼저 단군 조선의 강역에 대해서 『신단사(神壇史)』에 의거해 이렇게 썼다.
“(단군)조선의 서쪽 변경은 유주(幽州)와 병주(並州)가 다 그 경내에 들어 있다. 조선에서 사신을 파견해 영토를 획정했는데〔勘界:감계〕 , 유주(幽州)와 영주(營州) 2주를 조선에 소속시켰다(이시영, 『감시만어』)”
유주는 지금의 북경 부근이고 병주는 지금의 하북성 일대 및 내몽골 자치주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한서(漢書)』 「설선(薛宣)열전」의 주석에서 당나라 안사고(顔師古:581~645)는 “낙랑군은 유주에 속해 있다〔樂浪屬幽州〕”고 말했다. 식민사학의 비정대로 낙랑군이 평양이면 도청은 북경에 있는데 산하 군청은 평양이라는 말이니 공문서 한 장 전달하다가 한 해가 간다. 단군조선의 강역에 유주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나,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낙랑군이 유주 산하라는 이야기는 서로 일맥상통한다.

-산동반도 제나라와 이웃했던 고조선

『후한서(後漢書)』 「광무제 본기」의 주석에는 “낙랑군은 옛 조선국이다. 요동에 있다(樂浪郡,故朝鮮國也,在遼東)”라는 대목이 나온다. 식민사학자들 논리대로면 평양이 요동이라는 뜻이니 요동을 정벌하겠다고 평양을 지나 압록강까지 북상한 이성계와 조민수 등은 모두 미친 사람들이 되는 셈이다. 이런 명확한 사료와 논리가 통하지 않는 전 세계의 유일한 집단이 한국 고대사학계다. 앞서 말한 영주는 시기에 따라 지금의 요녕성, 하북성, 산동성 등지로 비정한다. 그런데 한때 대만대 총장을 역임했던 중국의 역사학자 부사년(傅斯年:1896~1950)은 이렇게 말했다.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자허부(子虛賦)」에서 ‘제(齊)나라는 숙신과 비스듬히 경계를 이루고 있다’고 한 것에 의하면 옛 숙신은 당연히 한나라 때의 (고)조선으로, 후세의 읍루와는 관계가 없다(부사년,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

-한나라 지식인이 쓴 「자허부」

부사년의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에 대해서는 조금 더 검토가 필요하지만 산동반도에 있던 제나라가 고조선과 국경을 비스듬히 맞대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한때는 산동반도 북부까지 고조선 강역이었다는 뜻이다. 사마상여는 서기전 2세기 때 한(漢)나라의 명재상이었다. 사마상여의 「자허부」 원문은 다음과 같다.
“오유(烏有) 선생이 말하기를, ‘또 제나라 동쪽에는 큰 바다가 있고, 남쪽에는 낭야가 있고, 성산에서 유람하고, 지부에서 활을 쏘고, 발해에 배를 띄우고, 맹제에서 노는데, 숙신과 비스듬히 이웃하고 있고, 오른쪽은 탕곡과 경계를 이룬다〔烏有先生曰……且齊東渚鉅海,南有琅邪,觀乎成山,射乎之罘,浮渤澥,遊孟諸,邪與肅慎為鄰,右以湯谷為界〕’라고 했다(사마상여, 「자허부」)”
산동반도 제나라와 이웃했던 숙신은 만주에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부사년은 이 숙신은 고조선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또한 고조선이 실제로 존재했던 한나라의 재상이 말한 지리지식을 우리가 부인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 나라 고대사학계가 상식적이라면 말이다.

-온 겨레가 경모했던 이시영

만약 이시영 선생이 다시 살아나셔서 이런 주장을 펼치면 어떤 일을 당할까? 장면 정부 때 문교부 장관을 역임했던 명천(鳴川) 윤택중은 『감시만어』 간행사에서, “우리 온 겨레가 경모(敬慕:존경하고 사모함)하는 성재 이시영 선생은 한말 조선과 상해임정과 대한민국 정부를 연결하여 우리 정부이 정통성을 이어주는 가장 큰 맥이시다”라고 추앙했는데,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식민사학자들과 조선총독부 기레기 언론들로부터 ‘국뽕’ 등의 온갖 모욕을 당해야 했을 것이다. 아직도 이 나라 역사관은 조선총독부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계속)
(사진설명) 가운데 검은 옷이 백범 김구, 그 왼쪽이 성재 이시영, 오른쪽이 석오 이동녕(1936년 가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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