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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8월 7일 - 김현구 씨가 보는 일 왕가와 백제 왕가 등록일 2017.09.27 21:34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2447
-일왕의 후손은 백제왕으로부터 나왔다.

메이지시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어용 학자들을 내세워 한국사 왜곡에 나섰던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일왕가(김현구 씨는 반드시 천황가라고 쓴다)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한 것이었다. 백제계가 건너가서 일왕가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한국은 물론 일본인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상식이었다. 그래서 일본 극우세력들은 이 관계를 거꾸로 바꾸어 놓아야 한국을 식민지로 영구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식민사학을 창작해서 전파했다. 그러나 왜곡 심한 일본의 기록으로도 역사조작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례로 서기 815년에 편찬한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 일본의 30대 일왕 민달(敏達:비다쓰:재위 572~585)에 대해 이런 기록이 있다.
“민달(시호)의 후손은 백제왕으로부터 나왔다. 이는 『속일본기』의 내용과 같다〔出自謚敏達孫百濟王也 續日本紀合〕(『신찬성씨록』, 「좌경 황별 대원진인(左京 皇別 大原真人)」)”
『신찬성씨록』은 815년 당시 일본 내 왕족을 비롯한 귀족들의 족보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일왕 민달의 후손은 백제왕으로부터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찬성씨록』에는 진인(眞人:마히토)이 앞머리에 나오는데 진인은 황족 중에서도 으뜸 씨족이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수도 지역의 진인 씨족들을 제1권 황별(皇別) 첫머리에 수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민달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4개의 진인(眞人)황족들의 계보를 조사해보면 대부분 백제의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찬성씨록』은 ‘민달의 후손이 백제왕으로부터 나왔다’고 했지만 사실은 민달 자신이 백제의 후예다. 민달이 거주했던 곳의 이름이 백제대정궁(百濟大井宮)이란 사실은 그 증거의 하나일뿐이다.

-백제왕실이 일왕가의 후손이다?

이런 사유들을 들어서 한 방송 프로그램이 민달천황을 백제인의 후예라고 방송했다. 그러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김현구 씨는 이에 발끈하면서 이렇게 부인했다.
“백제왕이 비다쯔(민달)천황의 손자라면 백제왕들이 일본천황의 자손이라는 이야기는 되지만 일본 천황가가 백제인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문면(文面)만으로는 천황가가 백제인이라는 결론을 끌어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이 ‘일본 천황가는 백제인들이었던 모양’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김현구,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 26쪽)”
김현구 씨는 백제왕실이 일 왕가의 선조가 아니라 일 왕가가 백제 왕실의 선조라는 것이다. 김현구 씨는 고대 가야·백제계가 일본 열도로 건너가서 야마토왜를 건설한 것이 아니라, 야마토왜에는 원래부터 고대 군사강국이 있었고, 이 군사강국에 백제에서 남녀왕족들을 인질로 보내서 천황을 섬기게 하는 과정에서 일 왕가의 피가 백제 왕실에 하사되었다는 것이다.

-백제 왕녀를 불태워죽였다는 김현구 씨

김현구 씨가 일 왕가에 백제 왕가의 피가 전해졌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살펴보자.
「천황이 “(백제에서 보낸 왕녀)지진원을 취하려 했는데 이시까와노따떼(石川楯)과 관계를 맺었으므로 화형에 처하였다”(유우랴꾸천황 2년〔457〕 7월조)는 내용으로도 그들의 혼인 상대가 짐작이 간다. 이렇게 해서 일본의 천황가에 백제왕가의 피가 수혈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김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