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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8월 1일 - 가야는 임나가 아니다 등록일 2017.09.27 21:00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1063
-임나가 가야의 별칭?

홍익대학교 교수 김태식은 “임나는 가야의 별칭”이라고 말한다. 김현구 씨도 지도를 그릴 때 반드시 ‘가야(임나)’라고 표기한다.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가야가 『일본서기』의 임나라는 것이다. 임나가 곧 가야일까? 『삼국사기』에 임나는 딱 한 번 나온다. 『삼국사기』 「강수 열전」에서 강수가 “신은 원래 임나(任那) 가량(加良)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조선 후기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강수는 중원경 사람인데, 중원은 지금의 충주이니 충주를 옛 임나국이라고 비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1850년대 정한론(征韓論:한국을 점령해야 한다는 논리)을 주창하는 일본인 식민사학자들과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가야가 『일본서기』의 임나라고 주장하면서 순수한 학술논쟁이 침략이론으로 변질되었다. 물론 지금 김현구 씨를 비롯한 한국 학자들이 ‘가야=임나’를 주장하는 것은 안정복처럼 순수한 학술논쟁이 아니라 일본 극우파의 한국 침략 이론의 변종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삼국사기』의 가야는 『일본서기』의 임나가 아니다.

과연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가야는 『일본서기』의 임나와 같은 나라일까? 먼저 가야와 임나는 건국 연대가 다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가야가 서기 42년에 건국되었다고 말한다. 반면 『일본서기』는 임나의 건국시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숭신(崇神) 65년에 임나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일본서기』는 연대부터 맞지 않는 믿지 못할 역사서지만 숭신 65년을 서기로 환산하면 서기전 33년이다. 이때 임나가 건국되었다고 가정해도 75년 이상 차이가 난다. 
건국연대가 차이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멸망연대가 차이나는 것이다. 김현구 씨 등은 369년에 야마토왜에서 온 왜군이 가야를 멸망시키고 임나를 세웠다고 말한다. 그후 562년까지 가야는 임나라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법흥왕 19년(532)에 금관가야가 멸망했고, 진흥왕 23년(562)에 대가야가 멸망했다고 말한다. 이후 『삼국사기』에는 더 이상 가야에 관한 기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만약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가야가 『일본서기』의 임나라면 가야가 멸망한 562년 이후에는 『일본서기』에도 임나가 등장하면 안 된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거의 100여년 뒤인 645년에도 임나가 존속하는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가야는 『일본서기』의 임나가 아니다.

-369년에 가야는 멸망했는가?

김현구 씨를 비롯해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신공(神功) 49년(249+120=369?)에 가야를 정벌하고 임나가 들어섰다고 말한다. 물론 모두 『일본서기』만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이다. 김현구 씨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한반도 남부경영의 주요 내용은 모두 369년 목라근자의 소위 ‘가야 7국 평정’ 내용을 전제로 해서만 그 사실이 성립될 수 있다(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55쪽)」
『일본서기』 신공 49년은 서기 249년이지만 김현구 씨 등은 여기에 120년을 보태서 369년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일본서기』 에는 이때 신공왕후가 아라다와케(荒田別) 등의 장군을 보내 가라, 남가라, 탁순, 안라, 다라 등을 정벌했다고 나오는데, 김현구 씨 등은 이것이 가야정벌 기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이때 가야가 망하고 임나가 들어섰다면 한국측의 사료에도 이 거대한 사건이 기록되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369년에 가야왕이 교체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가야의 이시품왕이 346~407까지 재위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이시품왕이 369년에 쫓겨나기는커녕 407년까지 왕위에 있다가 그 아들 좌지왕(재위 407~421)에게 물려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이시품왕이 사농경(司農卿) 극충(克忠)의 딸 정신(貞信)을 왕비로 삼아 좌지왕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고, 좌지왕은 또한 아들 취희왕(재위 421~451)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369년에 가야 왕실은 아무 변동이 없었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차이

『일본서기』는 369년에 근초고왕이 아들 근구수와 함께 야마토에서 온 사신에게 “지금부터 천추만세까지 조공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삼국사기』는 같은 해에 백제의 근초고왕이 고구려 군사를 꺾었다고 달리 말하고 있다. 김현구 씨가 법정에서 “나는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모릅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가야=임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가라(加羅)가 『삼국사기』에도 나온다고 주장한다. 『삼국사기』는 가야(加倻)라고 주로 표기하다가 신라본기 내해 이사금 14년(209)조에 포상(浦上)의 여덟 나라가 가라를 침공했다는 기사처럼 가끔 가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서기』에 나오는 가라를 한반도 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이 중국 여러 지역에 나온다는 이유로 삼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재야의 일부 학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서기』에 가라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은 가야계가 일본 열도에 진출해 소국을 세웠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임나와 백제의 거리

『일본서기』 「계체(繼體)」 6년 12월 조는 임나의 4현이 “백제와 가깝게 연달아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통행하기 쉽고 닭과 개의 주인도 구별하기 어렵다”라고 말하고 있다. ‘닭과 개의 주인도 구별하기 어렵다’는 말은 한 동네나 마차가지란 말이다. 경상도에 있는 임나의 닭과 개주인과 충청도나 전라도에 있는 백제의 닭과 개주인이 서로 헷갈릴 리 있겠는가? 『일본서기』에 나오는 백제, 임나 등은 동네국가 수준이었다. 『삼국사기』의 가야, 백제가 아니다. 이처럼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서기』도 조금만 분석해보면 ‘가야=임나’는 헛소리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서 후술하겠지만 북한 김석형의 ‘분국설’이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