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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7월 26일 - 고려, 조선의 북강 강역은? 등록일 2017.09.27 20:15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2895
-고려의 북방강역은 공험진까지

고려의 북방강역은 압록강 북쪽의 북계와 두만강 북쪽의 동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중 동계에 대해 『고려사』 「지리지」 동계 조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비록 연혁과 명칭은 같지 않지만 고려 초로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공험(公嶮) 이남에서 삼척(三陟) 이북을 통틀어 동계라 일컬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공험진은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이다. 고려 초부터 고려 말까지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의 공험진까지가 고려의 북방 강역이었다는 것이다. 그럼 국고 47억원을 들인 『동북아역사지도』는 고려의 북방강역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두만강 북쪽은커녕 함경도까지 모두 삭제시켰다. 물론 아무런 사료적 근거가 없다. 모두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한국사 강역축소론’을 지금까지 추종하는 것이다.

-세종 때 압록강, 두만강까지 확장?

조선시대도 마찬가지다. 2009년에 사용하던 국정 『국사 교과서』는 “세종 때에는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획정하였다(88쪽)”라고 서술했으며, 2013년의 검인정 『국사교과서』는 “세종 때는 대규모 원정군을 보내 4군과 6진을 개척하여 두만강과 압록강까지 국경을 넓혔다(두산동아, 122쪽)”라고 서술했다. 박근혜 정권 때 만든 국정 중학교 『국사교과서』는 “세종 때 최윤덕과 김종서에게 4군과 6진을 설치하게 하고, 충청·전라·경상도의 주민을 이주시켜 압록강과 두만강 지역까지 영토를 개척하였다(160쪽)”라고 서술했다. 과거의 국정이든, 지금의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모두 세종 때 4군 6진을 개척해서 조선의 강역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이 또한 갱단사학계의 이른바 ‘정설, 통설’이다. 과연 1차사료도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

-조선과 명의 북방국경선도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

태종은 재위 4년(1404) 5월 예문관 제학 김첨과 왕가인을 명나라 수도 남경에 보내 조선의 북방 강역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본국의 동북 지방은 공험진부터 공주·길주·단주·영주·웅주·함주 등의 주(州)인데 모두 본국의 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태종실록』 4년 5월 19일)
태종은 이 국서에서 분명히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의 공험진 이남은 조선영토라고 말했다. 명나라 수도 남경에 갔던 김첨은 다섯 달 정도 지난 태종 4년(1404) 10월 1일 돌아와 명나라에서 조선의 국경 주장을 수용했다고 전해주고 있다. 즉, 조선과 명의 국경선 역시 두만강 북쪽 700리의 공험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갱단사학계는 일본인들의 ‘한국사 강역축소론’을 지금껏 추종해 아무런 사료 제시도 없이 세종 때에야 그것도 4군 6진 개척으로 압록강, 두만강까지 강역이 넓어진 것처럼 학생들과 국민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고대사뿐만 아니라 한국사 전반에 걸쳐 조선총독부 반도사편찬위원회에서 창안한 ‘한국사 강역축소론’이 ‘정설, 통설’로 자리잡고 있는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적폐 중의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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