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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7월 6일 - 『한겨레 21』 길윤형의 말바꾸기 등록일 2017.09.27 19:41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1057
-우리 사회의 역린

『한겨레 21』 편집장 길윤형이 ‘식뽕’이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단군과 백두산을 표지에 걸고 ‘사이비역사학의 역습(「한겨레 21(2017. 6. 26)」)’이라고 단군과 민족사학을 모독해보니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음을 느꼈을 것이다. 무슨 소설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칭 소설가 이문영에게 원고 청탁을 하면서 “이런 기사를 내보내면 역풍 엄청납니다.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다는 것으로 봐서 처음부터 싸우려고 덤빈 특집인데, 이 정도 역풍이 일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길윤형은 ‘식뽕’에서 ““<한겨레>의 몰락을 길윤형 편집장이 주도한다”는 저주의 말도 있었습니다.”라고 토로했다. 그 역풍의 뿌리가 어디일까? 우리 사회의 권력과 돈은 친일파 후손들이 다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 안다. 그러나 명분만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명분을 건드리면 엄청난 역풍이 분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다. 생각해보라. 『조선일보』, 『한겨레』, 『경향』, 『한국일보』라는 좌우 언론카르텔이 ‘사이비, 유사역사학’으로 매도하며 융단폭격을 퍼붓는데도 아무 효과가 없을뿐만 아니라 거꾸로 엄청난 역풍이 부는 것은 무엇을 뜻하겠는가? 허성관 미사협 상임의장(전 행자부 장관)의 진단대로 이것은 우리 사회의 ‘역린’이다. ‘친일파를 옹호해선 안 된다’는 이 역린 때문에 뉴라이트들이 만든 교학사교과서가 좌절되었고,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던 국정교과서가 좌절된 것이다.

-매국사학, 학문적 사기

또하나 중요한 것은 매국사학이 학문적으로 사기라는 점이다. 이제는 식민사학이라는 표현 대신 ‘매국사학’ ‘매국위증사학’, ‘강단사학’이란 말대신 ‘갱단사학’으로 쓰자는 제안들이 속출하고 있다. 모두 명실이 상부한 용어다. 길윤형은 2주 전의 ‘국뽕 3각연대’에서 “지금까지 북한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 2600여 기의 낙랑고분이 확인됩니다. 옛 사서의 기록과 이 성과를 근거로 한국의 고대 사학자들은 대부분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인근으로 비정합니다. 이것이 ‘일군의 학자’들 눈에는 견디기 힘든 ‘식민사학’의 잔재로 비친 것이지요.”라고 썼다. 북한의 고고학 발굴 결과 ‘낙랑=평양설’이 ‘확인’된 것처럼 썼다. 2주 후의 ‘식뽕’이란 칼럼에서는 “개인적으로 한사군이 어디에 있었건 관심 없습니다.”라고 물러났다. 2주 전에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써 놓고 사기로 드러나니까 ‘개인적으로 관심 없다’고 물타기하는 것이다. 
물론 길윤형이 2주 전에도 ‘낙랑=평양설’이 학문적 사기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고대사학계의 ‘정설, 통설’이 사기일 줄이야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엄청난 비판을 받고 조사해보니 『조선일보』에서 ‘무서운 아이들’이란 닉네임을 붙여준 안정준 등이 북한의 연구결과를 180도 다른 내용으로 바꾸어 사기친 것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관심 없습니다.”라고 물타기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매국사학자들에게 사기 당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썼어야 한다. 앞으로는 “이런 사기꾼들에게 당하지 않고 올바른 길을 걷겠습니다”라고 사과하면 박수 받는다. 공자가 성인의 조건으로 든 것이 ‘불이과(不二過)’,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인 순사보다 더 악랄하게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했던 한국인 순사보조원 같은 ‘무서운 아이들’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위대한 상고사와 ‘일왕절대주의?’

그러나 길윤형은 “한국의 ‘위대한 상고사’는 일본 우익이 믿었던 일왕 절대주의와 얼마나 다른가요? ‘위대한 상고사’ 논의는 공허합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비유로 자신의 과오를 합리화한다. 중국의 1차사료는 “낙랑군=하북성 일대”라고 나온다고 팩트를 말하는 것이 ‘일왕 절대주의’와 무슨 상관이 있나? ‘낙랑군=평양설’이야말로 ‘일왕 절대주의자’들이 조작한 것 아닌가? 일제 군국주의에 맞서 싸우다 사형당하고, 고문사하고, 감옥에서 신음하신 선조들의 역사관을 왜 ‘일왕 절대주의’와 등치시키나? 조선총독부가 돈 쓸 곳이 없어서 세키노 타다시를 북경 유리창가에 보내 ‘한나라, 낙랑유물’들을 집중적으로 사서 총독부로 보내게 했겠는가? ‘낙랑=평양설’이야말로 ‘일왕 절대주의’의 필수적 요소였고, 그래서 지금도 “조선총독부는 영원히 우리를 지도하신다”는 매국 갱단사학자들이 ‘낙랑=평양설’을 ‘정설, 통설’이라며 매달리는 것 아닌가? 백암 박은식, 석주 이상룡, 단재 신채호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치된 목소리로 ‘낙랑=평양설’을 비판한 이유가 있다.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보라. 여순 감옥에서 한을 품고 돌아가신 단재 신채호 선생의 편에 설 것인지, 단재 선생을 ‘세자로 말하면 또라이, 네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라고 저주하는 매국 위증사학의 편에 설 것인지, 진실을 추구해야 할 언론인이 아니라 보통의 대한민국 사람의 가슴으로만 생각해봐도 답은 자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