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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9월 8일 - 나의 눈으로 찾는 진실 등록일 2017.09.27 22:07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2337

-이탈리아의 마우리찌오 리오또 교수

『교수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봤다. 나폴리동양학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마우리찌오 리오또(Maurizio Riotto) 교수 이야기다. 한국학을 주제로 170여종의 저서를 저술했다니 대단한 열정이다. 국내 여러 대학에 방문교수로 오기도 했었다는 마우리찌오 교수는 한국 대학에는 “인문학에 대한 사랑이 없다. 인문학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은 자신이 연구하는 인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는 소리다”라고 쓴소리했다. 이외에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고전(古典)’을 특화해 가르치는 ‘고전고등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자신이 고전고등학교 출신이라서 고등학교 때부터 라틴어, 그리스어 등을 공부해서 고문헌 연구를 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교수신문, 2017. 9. 4) 요즘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 남녀 고등학생들이 자주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역사나 고전을 가르치는 고등학교가 있었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강지리지」 원문을 해석하는 중학생

얼마 전 한 중학생이 찾아왔다. 놀란 것은 『사기』 「태강지리지」 원문을 해석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고, 만리장성이 시작된다(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는 원문을 말한다. 갈석산은 중국의 하북성 창려현과 산동성 무체현에 있는데, 「태강지리지」에서 말하는 갈석산은 하북성 창려현 갈석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병도는 이 낙랑군 수성현에 대해서 “자세하지 아니하나 지금의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遂安)에 비정하고 싶다”는 유명한 28자를 남겼다. 웃기는 것은 이병도의 대부분의 학설(?)이 그렇듯이 이 역시 그의 창작이 아니라 조선총독부의 이나바 이와기치가 먼저 우긴 것을 표절한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47억원의 국고를 들여 제작한 「동북아역사지도」 역시 낙랑군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으로 거듭 표절했다는 점이다. 국회 동북아역사왜곡특위에서 관련 근거 제시를 요구하자 지도제작진들은 이병도 학설을 근거랍시고 제시했다. 이들이나 국회에서 이 사업을 중단시켰다고 거품물던 여러 카르텔 신문의 기자들이 ‘무뇌아들’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지만 「태강지리지」의 원문을 해득하는 이 중학생의 미래를 생각할 때 답답함이 밀려왔다. 이 중학생이 자신의 희망대로 사학과에 진학하면 갈석산이 수안에 있다고 우기는 무뇌아들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존 카터 코벨과 한일고대사의 진실

미국의 여성 미술사학자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한일고대사의 진실을 알아차리고 난 후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고대 야마토왜가 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가야설’ 따위에 대해 “물론 진짜 사실을 180도 뒤집어놓은 것(존 카터 코벨,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 학고재, 1999년)”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학계로부터 따돌림 당한 것이다. 1981년에 그는 일본은 물론 이해할 수 없는 한국학계의 행태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어째서 일본은 그들이 한국문화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그토록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그러한 사실이 놀랍기 그지없다. …… 그렇지만 무엇 때문에 한국의 학계는 그렇게 소극적인가? 지금의 나이든 학자들은 과거 일본 사람 밑에서 공부했기에 그들에 대한 무슨 의리나 의무 같은 게 있어 그러는 것인가? 아직 서른이 안 된 젊은 학도들은 누구에게도 빚진 것 없을 테니까 이들은 박차고 일어나 진실을 밝혀서 케케묵은 주장들을 일소해버렸으면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 나는 때때로 독자들로부터 두 나라 사이의 문화적 관계가 항상 그렇게 한국에서 일본으로 ‘일방적 흐름’만 계속되었던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그렇다. 그 흐름은 사실상 99퍼센트까지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일방적 흐름으로 지속되었으며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화가와 건축가 그리고 도공들을 통해 그 영향이 나타났다(존 카터 코벨 지음,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코벨 박사가 ‘박차고 일어나서 진실을 밝’히기를 바랐던 젊은 ‘무서운 아이들’은 ‘가소로운 아이들’로 전락해 ‘조선총독부 역사관은 영원히 우리의 앞길을 밝히고 계시다’고 욱일승천기 흔들면서 거품물고 있고, 『한겨레 21』은 이들의 주장을 매주 대서특필하고 있다. 존 카터 코벨 같은 선학들에게 부끄럽기 그지없는 광경들이다.

-고고학자 안춘배 교수 

가야고고학을 전공한 안춘배 전 신라대교수, 전 부산시 문화재위원장은 1990년에 일본 고고학계가 정리한 발굴 자료를 분석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까지 자료로 볼 때 임나일본부설이란 일고의 가치도 없음을 한일양국의 고고학자들은 모두 인식하고 있다.(안춘배, ?고고학상에서 본 임나일본부설?, ??가라문화 제8집??, 1990)”
‘임나=가야설’이 헛소리라는 사실을 ‘한일양국의 고고학자들이 모두 인식’한 때가 1990년이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오늘 ‘가야=임나’ 운운하는 임나일본부설은 한일 양국에서 거꾸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본 극우세력들이 한국 침투전략을 바꾼 때문이다. 임나일본부설이 학문적으로 파탄나자 한국 젊은이들에게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지원해서 일본에서 학위를 따게 하고 국내 대학에도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해 임나일본부설을 전파하게 한 것이다. 

사사카와 료이치 (笹川良一:1899~1995)가 만든 사사카와 재단에서 만든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 도쿄재단 따위와 아시아 운운하는 여러 기금의 돈을 받은 한국인 노비들이 일본 극우파의 ‘가야=임나설’을 전파하고 일제의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논문들을 써대고 있는 형편이다. 존 카터 코벨 박사처럼 한일고대사는 물론 한중고대사도 사료에 있는 대로만 공부하면 그 진실이 드러난다. 고대 야마토왜는 백제의 제후국이었고, 최소한 갈석산이 있는 하북성까지는 고조선 강역이었다는 진실이다. 그리고 한사군 낙랑군은 지금의 하북성에 있었다는 진실이다. 그러나 그 진실은 노비의 시각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진짜 학자가 되는 첫 걸음은 자신의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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