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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8월 28일 - 백제는 언제 건국되었는가? 등록일 2017.09.27 21:58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2022
-이병도의 참회

서울법대 학장이었던 최태영 선생이 국사학계(?)의 태두라고 불렸던 이병도 교수를 설득하자 단군을 역사 인물로 인정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식민사학의 기관지는 아니었던 『조선일보』는 1986년 10월 9일자에 “단군은 신화 아닌 우리 국조”라는 제목으로 ‘원로 문헌사학자 이병도 씨 본지 특별 기고’라고 대서특필했다. 이 특별기고 외의 인터뷰에서 이병도 교수는 “2세들에 대한 바람직한 역사교육을 위해서는 삼국의 건국시조 및 초기역사를 교과서에 수록해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인정하고 교과서도 그렇게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정이고 검인정이고 국사교과서는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따라서 삼국의 건국시기를 몇 백 년씩 낮춰 쓰고 있는 실정이다. 즉, 고구려는 태조왕(재위 53~146), 백제는 고이왕(재위 234~286), 신라는 내물왕(재위 356~402) 때 건국했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쇼크 먹은 이병도의 제자들 

이병도의 참회에 쇼크를 먹은 것은 그를 국사학계(?)의 태두로 떠받들던 제자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병도는 같은 서울대의 고고학자 김원룡 교수가 1960년대 중반 풍납토성의 발굴결과를 가지고 풍납토성이 서기 1세기부터 건축되었던 한성백제의 수도라고 주장하자 격분했다. 이병도는 백제가 고이왕(재위 234~286) 때 건국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부정한 것이었다. 이병도의 제자들은 일제히 성토에 나섰고 김원룡은 결국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갈릴레이는 교황청의 사형 압력에 굴복해 지동설을 철회했지만 그나마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중얼거림이라도 남겼는데 아쉽게도 김원룡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스승을 공격하는 제자들

그 20년 후인 1986년, 이병도는 최태영 학장의 권유로 ‘역사의 진실’을 찾았고,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20년 전 백제가 서기 1세기 경 건국되었다는 고고학적 발굴결과를 일제히 성토했던 이병도의 제자들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놀랍게도 스승 이병도 교수를 비판하고 나섰다. “노망이 났다”, “최태영이 협박했다”는 등으로 스승이 말년에 찾은 학문적 진실과 참회를 짓밟았다. 만약 이때 이병도의 제자들이 스승의 참회를 받아들여 함께 반성하고, 노선을 전환했다면 지금 한국 역사학계, 특히 고대사학계는 이 분야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탄하는 그런 집단이 아니라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학자들의 집단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 나라를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이병도는 니뽄사학계의 한국지부장

그때만 해도 이병도의 제자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병도가 실제 국사학계(?)의 태두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병도는 대한민국 국사학계(?)의 태두가 아니라 니뽄(Nippon)사학계 한국지부의 관리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니뽄사학계 한국지부의 진정한 주인은 쓰다 소키치·이마니시 류·스에마쓰 야스카즈 선생님이지 이병도가 아니었다. 이병도는 니뽄사학계의 한국 지부를 관리하는 중간 보스에 불과했다. 이병도가 해방 후에도 일본 국수주의 집단인 텐리교(天理敎) 본부에 가서 천리교 교복을 입고 예배에 참석했다는 증언(김용섭의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으로도 이는 입증된다. 그런데 이 중간보스가 니뽄사학계 한국지부를 니뽄에서 독립시켜 진정한 ‘한국사학계’를 만들려고 하자 산하 조직원들이 우리들의 진정한 오야붕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라면서 일제히 반기를 든 사건이었다.

-고이왕 건국설도 조작?

『삼국사기』는 서기전 18년 온조왕이 백제를 건국했다고 쓰고 있다. 이병도는 3세기 중반 8대 고이왕이 건국했다고 수정했다. 그런데 21세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한국측 위원이었던 홍익대학교의 김태식 교수는 이병도의 고이왕 건국설에 대해, “후세 백제인들의 고이왕 중시 관념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다. 이 시기 백제의 발전 정도는 좀 더 낮추어 보아야 할 것(『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2005년)”이라고 주장했다. ‘가야=임나설’을 주창하는 김태식은 서기전 18년 건국이라는 『삼국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서기 3세기 중반이라는 이병도도 틀렸다는 것이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기반해서 백제는 13대 근초고왕(재위 346~375) 때 건국되었다는 쓰다 소키치·스에마쓰 야스카즈 선생님이 맞다는 것이다.

-이른바 학계의 견해?

21세기 백주 대낮에 이병도마저 땅에 파묻고 쓰다와 스에마쓰를 되살린 것이다. 서울교대 임기환 교수는 「동북아역사지도」 문제로 국회 동북아역사왜곡특위에서 진술회가 열렸을 때 의원들이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대해서 묻자 “삼국사기를 불신한다? 그런 학자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답변하더니 잠시 후 의원들이 김태식의 ‘백제가 고이왕 때 건국되었다는 것도 조작’이라는 위 기술에 대해서 묻자 ‘학계의 견해와 배치되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해서 여야의원들과 방청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나는 이 땅의 조선총독부 기레기 언론들이 식민사학자들과 한 통속이 되어서 이 국회회의와 관련해서 북한 강역은 중국에 넘겨주고, 4세기에도 신라, 백제, 가야를 삭제하고, 독도까지 일관되게 삭제한 「동북아역사지도」를 옹호하고, 국회 동북아특위를 맹비난하고 나서는 것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존 카터 코벨이 바랐던 ‘무서운 아이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일본미술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동양미술사학자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은 제3자의 눈으로 한일고대관계사를 본 결과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달하는 결론, 즉 고대 야마토왜는 백제의 속국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코벨이 보기에 이를 거꾸로 인식하는 한국 고대사학계는 미스터리였다. 그래서 한국의 젊은 사학자들에게 희망을 걸고 이렇게 주문했다.

“지금의 나이든 학자들은 과거 일본 사람 밑에서 공부했기에 그들에 대한 무슨 의리나 의무 같은 게 있어 그러는 것인가? 아직 서른이 안 된 젊은 학도들은 누구에게도 빚진 것 없을 테니까 이들은 박차고 일어나 진실을 밝혀서 케케묵은 주장들을 일소해버렸으면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존 카터 코벨,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 학고재)”
존 카터 코벨은 끝내 ‘한국의 젊은 학도들이 그릇된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 진실을 밝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이주한 위원이 『매국의 역사학자 그들만의 세상』에서 말한 것처럼 나도 늘 코벨 박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나마 코벨 박사가 바란 것과 정 반대로 “조선총독부는 영원히 우리를 지도하신다”는 ‘무서운 아이들’과 그를 옹호하는 조선총독부 기레기 언론들과 지금도 「이것이 진짜 고대사다」 따위의 일본 극우파 추종 글들을 연재하는 『한겨레 21』의 작태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너무 서글픈 현실인가? 역사적 진실에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대폭 늘어난 현실에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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