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혁신으로 꿈을 현실로 만드는 세상!

학술 이야기

  • 한국 바른역사이야기
  • 이덕일의 역사특강

논문 자료

HOME > 학술 이야기 > 이덕일의 역사특강

제목 2017년 8월 25일 - 최남선의 참회와 민족을 부인하는 ‘무서운 아이들’ 등록일 2017.09.27 21:55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2370
-요시찰인이었던 최남선

「독립선언서」를 쓴 육당 최남선이 친일로 전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그는 당시 특출한 문인이자 학자였다. 만17세의 나이로 일본 와세다대 고등사범부 지리역사학과를 중퇴하고 귀국하면서 인쇄시설과 기술자들을 데려와 신문관(新文館)이란 출판사를 차려서 『소년』같은 잡지를 발행했다. 한국 문고본의 효시인 6전(錢)소설도 기획해서 『홍길동전』·『심청전』·『사씨남정기』·『전우치전』 등의 소설도 펴냈다. 또한 현채·박은식 등과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조직해서 고전을 간행하고 보급 운동에 나섰다. 『삼국사기』·『삼국유사』·『발해고』 등의 역사서와 『택리지』·『산경표』 등의 지리서, 『용비어천가』·『성호사설』·『경세유표』 등의 고전과 『이 충무공 전서』같은 전집류가 조선광문회에서 간행되었다. 관상감에 근무했던 그의 부친 최헌규가 농력(農曆)과 한약재 판매 등으로 축적한 재산을 민족 문화 수호에 아낌없이 썼다. 1927년 경 경성복심법원검사국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요시찰 명부인 『왜정시대(倭政時代)인물사료』는 최남선을 “신문관을 설립하고, 광문회를 조직했으며, 「독립선언문」을 작성했다”면서, “배일사상을 가지고, 불온 잡지 등을 발행하고, 필연(筆硯)으로 배일사상과 조선독립사상을 고취할 우려가 있는 자”라고 적고 있다.

-최남선의 변절

이런 최남선이 1928년 10월 조선사편수회 촉탁이 되더니 1936년에는 중추원 참의가 되고 1939년에는 일제가 세운 만주국의 건국대학 교수가 되었다. 급기야 1940년대에는 조선총독부의 선전원으로 전락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보람있게 죽자」, 「나가자 청년학도야」 따위의 글을 써서 학병지원을 권유하고, 직접 연설도 했다. 그만큼 믿었던 최남선이기에 그의 변절이 주는 충격은 컸다.

-최남선의 변명

최남선은 1949년 2월 반민특위(위원장 김상덕)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죄상을 고백하는 「자열서(自列書)(자유신문 1949년 3월 9일)」를 발표하는데, 첫 대목은 이렇게 시작한다. 
“민족의 일원으로서 반민족의 지목을 받음은 종세(終世)에 씻기 어려운 대치욕이다.”
그런데 최남선은 「자열서」에서 다른 것은 감내하겠지만 ‘국조(國祖) 단군’을 무함했다는 혐의만은 인정할 수 없다고 부인했다.
“이외에 나에게 집중된 한 죄목은 국조 단군을 무함해서 일본인의 소위 내선일체론에 보강재료를 주었다 합니다.”
다른 죄목은 감내하겠지만 “이 국조 문제는 그것이 국민정신의 근본에 저촉되는 만큼 일언의 변호를 용인치 못할 것이 있는가 한다.”라면서 자신은 국조 단군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국조 단군을 학문적으로 부활시키고 그를 중핵으로 국민정신을 천명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변명했다.

-백주 대낮에 테러당한 국조 단군

최남선이 “국조 단군을 무함했다”는 혐의만은 벗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이 불과 60여 년 전인데 어느덧 일본특파원 출신이 편집장이 된 『한겨레 21』은 표지에 국조 단군과 백두산을 그려놓고 「사이비역사학의 역습」이란 제목을 달았다. 조선총독부가 그토록 지우고 싶어 했던 단군이 『한겨레 21』에 의해 백주 대낮에 테러를 당한 것이다. 이승만이 친일경찰들을 동원해 반민특위를 강제 해산시킨 이후 우리의 민족정신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잘 알 수 있는 사례다. 그나마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 선생의 아들이 『한겨레 21』을 비판하는 생존 애국지사 및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것이 아직은 민족정신이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무서운 아이들과 『매국의 역사학자, 그들만의 세상』

또 다른 조선총독부 학술지 『역사비평』이 「사이비역사학…」 운운하는 글들을 싣자 『조선일보』에서 ‘무서운 아이들’이란 닉네임을 붙여주었다. 잘 알려진대로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한국일보』 따위가 이 ‘무서운 아이들’의 이야기를 대서특필해 주었고, 지금도 『한겨레 21』은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 ‘홍산문화는 우리 문화가 아니다’ 따위를 주장하는 반민족적 글들을 「이것이 진짜 고대사다」라는 특집으로 내보내고 있다. 친일파로 구속되었던 육당 최남선이라도 “이놈들!”하고 지팡이를 휘둘렀을 행태들이다. 
그래서 이 ‘무서운 아이들’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매국의 역사학자, 그들만의 세상』의 출간은 반가운 일이다. 이 책에는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무서운 아이들’과 그 스승들이 ‘민족’을 지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 충격적이다. 그 중 한 장면이 ‘무서운 아이들’ 중 한 명인 장미애(가톨릭대학교 강사)가 「민족의 국사 교과서, 그 안에 담긴 허상」이란 글에서 5차교육 과정의 국사과 교육목표에서 ‘민족’이 들어간 것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고 썼다.

“여전히 “민족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고 있어, 이 시기에도 민족적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중략). 정치적 민주화는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역사인식에서는 민족의 요소가 강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교과서 내용에서 ‘민족주의’적 요소가 강화되어가는 양상은 무엇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사이비역사학의 영향이다.”(장미애,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역사비평사, 2016, 74-75쪽)
‘민족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조되는 것이 문제라면서 ‘민족적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다’고 성토하고 있다. 최남선은 그나마 친 동생이 항일혐의로 체포되는 등 여러 우여곡절 끝에 변절하지만 ‘젊은’ 이란 생물학적 행태만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는 ‘가소로운 아이들’에게는 그런 과정도 없다. 일본 극우파 역사관의 세뇌교육의 병폐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매국의 역사학자, 그들만의 세상』은 “조선총독부사관을 계승한 강단사학계는 한국의 민족주의 전통을 매도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일본 극우파의 관점에 서 있다.”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표 국정교과서와 『한겨레 21』

박근혜 표 국정교과서는 ‘민족’을 삭제했다. “일제강점기가 좋았다”는 뉴라이트들의 주장대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고 서술했다. 그러면서 “한편, 38선 이북에서는 북한 정권이 수립되었다(1948.9.9.)”라고 덧붙였다. 1948년 건국설이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친일 매국세력들에게 건국 훈장을 수여하기 위한 흉계란 점은 차치하고라도 ‘민족’이란 동질성을 부정한다면 1948년 8월 15일에 건국했다는 대한민국과 1948년 9월 9일에 건국했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통일해야 할 당위성은 사라진다. 그래서 박근혜 표 국정교과서는 ‘민족’을 삭제해 ‘통일’의 당위성을 말살했다. 교과서에 ‘민족적 요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거품 물던 ‘무서운 아이들’의 소원대로 박근혜 표 국정교과서는 ‘민족’을 지웠다. 「이것이 진짜 고대사다」 따위로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한겨레 21』과 박근혜 표 국정교과서의 우리 민족에 대한 인식은 일치한다. 
모두 조선총독부의 관점, 즉 일본 극우파의 관점으로 우리 민족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함석헌 선생의 “깨어있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언명이 거듭 생각나는 까닭이다. 깨어 있기 위해서 『매국의 역사학자 그들만의 세상』을 다시 펼쳐본다.

1.jpg

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