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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8월 23일 - 중국 사료 그대로 베낀 『일본서기』 등록일 2017.09.27 21:54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754
-『일본서기』의 희한한 주장

『일본서기』는 빨라야 서기 3세기 후반 경에 시작하는 일본의 역사를 서기전 660년에 시작하는 것으로 1천년 정도 끌어올렸다. 그러다 보니 다른 역사서를 베껴서 메운 것이 많다. 『일본서기』 「웅략(雄略)」기는 거의 대부분을 중국 사료를 베꼈다. 여러 행적을 중국 고대의 폭군들에게서 따왔다. 그 웅략 9년조는 고구려에서 야마토왜에 조공을 바치려고 하는 것을 신라가 막아서 웅략이 신라 정벌을 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웅략 9년은 서기 465년으로서 고구려 장수왕 53년이고, 신라는 자비왕 8년의 일이다. 물론 『삼국사기』에는 이런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강자로 우뚝 서 북연의 황제가 귀순까지 했던 장수왕이 철기도 생산하지 못하는 야마토왜에 조공을 바치려고 했다는 기사는 물론 거짓이다. 『일본서기』에서 말하는 고구려, 신라가 『삼국사기』에서 말하는 고구려, 신라가 아니라 북한의 김석형이 본 대로 일본 열도 내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세운 분국이라고 보면 이해할만한 구석이 있다.

-무조건 『일본서기』만을 따르자고?

그러나 일본은 물론 남한의 식민사학자들은 모두 『일본서기』만으로 한일고대사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의 저자인 고려대 명예교수 김현구 씨는 『고대 한일교섭사의 제문제(2009)』에서 “싫든 좋든 6세기의 한·일관계는 『일본서기』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라고 우기고 있다. 인제대 교수 이영식은 “현대적 국가의식을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은 오히려 『일본서기』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다……우선은 『일본서기』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보는 태도도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고대 한국을 야마토왜의 속국으로 보는 사람들이야 ‘싫든 좋든’ 『일본서기』에 의존하겠지만 야마토왜를 백제의 제후국이라고 보는 나는 『일본서기』에 의존하지 않는다. 『일본서기』에만 의존하면 철기도 생산하지 못하고, 국가체제도 형성하지 못했던 야마토왜가 졸지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조공을 받는 상국이 되는 있을 수 없는 거짓말에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사료 베끼기

그런데 『일본서기』 웅략(雄略) 9년조의 기사는 중국사료를 조금 아는 사람이 보면 코미디 그 자체다. 『일본서기』는 일왕 웅략이 대장군 기소궁숙녜를 신라에 보내는 것을 “드디어 웅략이 수레를 밀어〔推轂〕 파견했다”라고 썼다. 수레를 민다는 뜻의 추곡(推轂)은 『사기』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사서에서 황제가 장수를 전쟁에 보낼 때 직접 수레를 밀어 보낸다는 기사에서 본뜬 것이다. 그런데 중국 사서를 본뜨려면 응용력을 발휘했어야 한다. 바다 건너 신라를 정벌하는 장수라면 ‘배를 밀었다〔推船〕’이라고 써야지 ‘수레를 밀었다〔推轂〕’라고 써서야 되겠는가? 고대에는 수레 타고 바다 건넜나?

-『사기』와 『한서』 베끼기

『일본서기』의 중국 사료 베끼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웅략이 민 수레를 타고 바다 건너 신라로 온 야마토왜의 장수 기소궁숙녜가 신라의 여러 고을을 공격하자 신라왕은 혼비백산했단다. 그러면서 이렇게 썼다.
“신라왕은 밤중에 관군의 북소리가 사면에서 들리는 것을 보고 탁지(喙地:녹지)가 모두 점령되었다고 생각하고, 수백 명의 군사와 더불어 도주했다.(『일본서기』 웅략 9년)”
이 기사는 『사기』 「항우본기」 및 『한서』 「고조본기」를 베낀 것이다. ‘사면에서 관군의 북소리가 들렸다’는 기사는 『사기』 「항우본기」에서 “밤중에 한나라 군사가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를 부르자” 항왕(항우)이 크게 놀라서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다 차지했는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라고 말했다는 대목을 베낀 것이다.

-『삼국지』를 똑같이 베껴

더 심하게 베낀 것도 있다. 「웅략기」는 『일본서기』의 많은 기사가 그렇듯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쟁에서는 이겨서 탁지를 모두 평정했다면서도 정작 죽은 것은 야마토왜의 장수들이고, 대장군 기소궁숙녜는 병에 걸려죽었다. 전쟁에서는 이겼는데 초토화가 된 것은 야마토왜군이란다. 웅략은 죽은 기소궁숙녜에게 칙서를 내려 그 공을 칭송하는데, 이런 대목이 있다.
“대장군 기소궁숙녜는 용처럼 날래고 범과 같이 노려서 두루 사방을 보았다. 반란을 일으키는 무리들은 토벌하고 사해를 평정하였다(『일본서기』 웅략 9년))”
이 구절은 『삼국지』 「위서(魏書)」 ‘조조 본기’에서 서기 213년 5월 후한의 헌제가 조조를 위공(魏公)으로 봉한 책문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삼국지』 원문과 비교해 보자.
“君, 龍驤虎視,旁眺八維,掩討逆節,折衝四海(『삼국지』)”
(군, 용양호시, 방조팔유, 엄토역절, 절충사해)
大將軍紀小弓宿禰、龍驤虎視、旁眺八維、掩討逆節、折衝四海(『일본서기』)
『삼국지』에서 그대(君)라고 한 부분만 대장군 기소궁숙녜(大將軍紀小弓宿禰)라고 바꾸었을 뿐 글자 한 자 다르지 않게 표절한 것이다. 『일본서기』의 웃기는 짓거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작 왜5왕은 『일본서기』에 없어
이렇게 중국 기록을 똑같이 표절하면서도 정작 중국 기록에 나오는 ‘왜5왕(倭5王)’에 대해서는 『일본서기』에 안 썼다. 중국의 『남사(南史)』·『송서(宋書)』 등에는 ‘찬(贊), 진(珍), 제(濟), 흥(興), 무(武)’라는 ‘왜5왕’이 사신을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례로 『남사(南史)』 동이열전 왜(倭)조에는 남조의 송(宋) 문제(文帝) 원가(元嘉) 2년(425)에 왜국왕 찬(讚)이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정작 『일본서기』에는 이런 기록이 없다. 그래서 『일본서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들이 『일본서기』의 누군지 ‘대충 때려 맞추기 시합’을 자주 연다. 그 결과 찬(讚)을 일왕 이중(履中), 진(珍)을 반정(反正), 제(濟)를 윤공(允恭), 흥(興)을 안강(安康), 무(武)를 웅략(雄略)으로 때려 맞춘 도박사(?)들이 많았다. 정확한 비교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 기록의 서기 연대를 가지고 대충 때려 맞추는 것이다. 제, 흥, 무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도박사들이 동의하지만 찬과 진에 대해서는 견해가 많이 달라져 찬을 일왕 인덕(仁德)으로 보기도 하고, 진을 반정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찬을 응신으로, 진을 인덕으로 보기도 한다. 어차피 기준이 없으니까 우기는 사람 마음인 것이 『일본서기』다. 『일본서기』는 한 마디로 처음부터 독자를 속이려고 마음먹고 쓴 사기(詐欺)책이다.

-한국학계를 장악한 『일본서기』

그런데 이런 사기책이 한국 고대사학계를 평정했다. 『삼국사기』는 가짜라면서도 『일본서기』는 진짜란다. 김현구 씨는 심지어 『일본서기』까지 조작해 백제에서 왕녀와 왕족들을 야마토왜에 인질로 보내 “천황을 섬기게 했다”고까지 주장했다. 대한민국 국민 세금으로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번역한 『일본서기(전3권)』은 해제에서 이렇게 썼다. 
“『일본서기』의 가치는 한반도 관련기사가 풍부하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가치는 『일본서기』가 고대인에 의해서 편찬된 고대의 사서라는 점에 있다. 『삼국사기』는 고려시대, 즉 중세인의 시각에서 본 고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일본서기』가 『삼국사기』보다 빨리 편찬되었으니 정확한 역사서라는 뜻이다. 빨리 사기치는 사기꾼의 말은 모두 사실이라는 논리다. 『일본서기』에 고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야마토왜의 속국으로 나오고, 임나일본부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 번역본은 주석에서 임나에 속한 현들을 일본 열도가 아니라 모조리 한반도 남부로 비정했다. 100년 전에는 나라가 먼저 망하고 그 다음에 역사가 망했다면 지금은 역사가 먼저 망했다. ‘가야=임나’ 운운하는 식민사학자들이 고대사학계를 다 장악했다. 아직 나라가 망하지 않았을 때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100년 전보다 더 큰 비극이 발생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