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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9월 4일 -『삼국사기』를 가짜로 모는 근거는? 등록일 2017.09.27 22:03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1099

-이병도의 백제 고이왕 건국설

이른바 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 서울대 교수는 “온조가 과연 주몽의 아들이냐 아니냐 함은 별문제로 삼고 그가 남래(南來:남쪽으로 옴) 즉시에 건국하였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온조가 서기전 18년에 백제를 건국했다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사를 ‘믿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럼 믿기 어려운 근거는 있나? 물론 없다. 자기가 믿지 않겠다는 것뿐이다. 사료를 바탕으로 과거사를 재구성하는 역사학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료도 부인하는 ‘내 맘대로 학’이다.
그러나 이병도는 최소한 그 한국인 제자들보다는 낫다.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사를 어떻게 왜곡하는지 열심히 배우던 이병도는 해방 후 일본인들이 쫓겨가고,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 때 친일파들이 다시 득세하면서 뜻하지 않게 국사학계(?)의 태두가 되었다. 물론 해방 후에도 조선사편수회의 스에마쓰 야스카즈 등이 한국을 들락거리며 식민사학자들을 출장지도했기 때문에 그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자신의 학설을 세우고 싶었다. 그래서 쓰다 소키치가 백제는 13대 근초고왕(재위 346~375) 때 건국했다고 주장한 것을 8대 고이왕(재위 234~286) 때 건국했다고 수정했다. 이처럼 오십보백보라는 성어(成語)가 딱 들어맞는 경우도 찾기 어렵다.

-이기백의 고민과 절충

그러자 이기백에게 고민이 생겼다. 이기백은 1942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문학부에 다니다가 학병으로 전선에 나가서 일본 관동군에 근무하다가 일제가 패망하면서 소련군에 포로가 되었다. 귀국해서 1946년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에 입학해 1년 만인 1947년에 졸업하고, 이화여대 및 서강대 교수가 되었다. 그가 1967년에 출간한 『한국사신론』은 공무원 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다. 이기백은 총론에서는 식민사학을 가장 열렬히 비판한 학자였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여지없이 식민사학을 옹호했는데, 물론 ‘『삼국사기』 불신론’의 강한 옹호자였다. 그래서 그는 백제의 건국군주를 누구로 삼아야 할 지 고민이 생겼다. 자신의 진짜 스승인 쓰다 소키치의 근초고왕설을 따르자니 비록 일본인들의 출장지도를 받지만 그래도 이른바 국사학계(?)의 태두가 된 이병도의 눈치가 보였다. 그러나 한일역사학자들에게 불가능은 없다. 그는 쓰다 소키치와 이병도의 견해를 적당히 뒤섞어 백제의 시조를 두 명으로 만들었다.
“고이왕 때에 백제는 한강 유역 일대를 지배하는 새로운 부족연맹체로 크게 성장하였을 것이다……그러나 백제가 고대국가로 등장을 하게 되는 것은 그보다 약 1세기 뒤인 근초고왕(346~375) 때로 생각된다(이기백, 『한국사신론』 1967)”
이기백은 ‘부족연맹체’ 백제의 시조는 8대 고이왕이고, ‘고대국가’ 백제의 시조는 13대 근초고왕이라는 것이다. 진짜 시조 온조는? 물론 사라지고 없다. 그야말로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학문이다.

-『삼국사기』 불신론의 근거는?

물론 『삼국사기』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 백제의 6대 구수왕 5년(218) “왕이 군사를 보내 신라의 장산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근초고왕은 물론 고이왕 때보다도 앞서는 이 기록을 가짜로 몰려면 구수왕이 서기 218년에 신라의 장산성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다른 기록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보다도 그때 꽤 먼 신라 강역을 공격하는 백제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고, 백제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신라라는 나라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료를 제시해야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나해이사금 23년(218)조에는 백제가 장산성을 포위하자 나해왕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했다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두 기사를 거짓으로 몰려면 218년에 신라와 백제라는 고대국가는 존재하지도 않았든지 최소한 서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냈다는 다른 기료를 제시하고, 그 사료가 더 신빙성 있다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임나일본부를 살리기 위해 『삼국사기』를 죽이다

그러나 그런 사료가 있을 턱이 없다. 자기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머릿속 생각이 유일한 근거다. 역사학이 아니라 심리학이다.(심리학을 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쓰다 소키치나 이마니시 류, 스에마쓰 야스카즈 등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삼국사기』를 가짜로 몬 것은 『삼국사기』의 시각으로 한일고대사를 보면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임나일본부설, 즉 ‘가야=임나설’ 따위가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가짜라고 주장했는데, 해방 72년이 넘도록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 한국 고대사학계의 정설, 또는 통설로 유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꾸로 이병도의 고이왕 건국설도 부인하고, 근초고왕 건국설로 되돌아가려는 역주행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최재석 교수의 정리

평생 『삼국사기』 불신론과 맞서 싸웠던 고 최재석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쓰다 소키치, 이마니시 류, 오타 아키라, 스에마쓰 야스카즈 등 모든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삼국사기』 불신론의 근거를 연구했다. 최재석 교수께서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조작되었는지를 판명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근거의 존재 여부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근거라고 제시한 수많은 주장은 다음의 어느 항목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이 근거라고 제시한 항목을 보면 아주 재미 있다.

① 처음부터 근거의 제시 없이 조작이라고 단정한 것.
② 근거를 조작해 놓고 『삼국사기』가 조작되었다고 한 것.
③ 근거 없이 수백 년 동안을 전설시대라고 말한 것.
④ 스스로 억측이라고 말하고도 조작되었다고 한 것.
⑤ 『삼국사기』의 기록과 상이한 말을 하여 놓고 그 기록이 틀렸다고 한 것.
⑥ 자기가 설정한 기준을 뒤엎고 조작되었다고 한 것.
⑦ 중국사적을 기준으로 하여 조작되었다고 한 것.
A 중국기록에 없으면 조작된 것이다.
B 중국기록과 같으면 모사한 것이다.
C 중국기록과 차이가 있어도 조작된 것이다.
⑧ 『일본서기(日本書紀)』등을 기준으로 하여 조작되었다고 한 것.
A 『일본서기』에 없으면 조작된 것이라고 하거나 불신한다.
B 『일본서기』와 차이가 있으면 불신한다.
⑨ 이설 내지 모순된 조항 ․ 기록이 있으면 조작된 것이라고 한다.
⑩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남이 이해하지 못할 것 같으면 조작된 것이라고 한다.
⑪ 기록이 불명확한 곳이 있으면 조작된 것이라고 한다.
⑫ 기록이 상세하여도 조작된 것이라고 한다.
⑬ 보통 한 나라의 국사나 왕조사의 상대사가 조작될 가능성이 있으니 신라사도 조작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⑭ 김부식이 신라의 개국연대를 소급하였으니 다른 사항도 조작된 것이라고 한다.
⑮ 착오 ․ 과오가 있는 기사가 몇 개 있다고 하여 조작되었다고 한 것.
⑯ 의심스러운 기사가 있다고 하여 조작되었다고 한 것.(최재석, ‘『삼국사기』 불신론 비판’, 만권당, 2015)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이 따위 논리가 아직도 ‘정설, 또는 통설’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고대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따위 논리를 비판하면 조선총독부 역사관의 추종자들이 ‘사이비, 유사역사학’이라고 비판하고 조선총독부 기레기 언론들이 가세하는 것이다. 학자나 기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재석 교수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도 말했다.
“제시된 근거를 하나하나 따져 본다면 역사학적 방법론에 의한 합리적 근거는 찾기 어렵다. 대부분이 사료적 근거의 제시 없이 무작정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조작되었다고 억측하거나 단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가운데는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오타 아키라(太田亮),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등처럼 자신들이 근거를 조작하거나 『삼국사기』 기록과는 다른 말을 해 놓고 조작되었다고 주장한 경우도 잇다. 또한 아무런 사료적 근거의 제시도 없이 수백 년 동안의 긴 기간을 전설의 시대라고 몰아붙이는 예도 수없이 포함되어 있다(최재석, ‘『삼국사기』 불신론 비판’, 만권당, 2015)”
지금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이른바 ‘정설, 통설’로 추종하는 한국과 일본의 모든 사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따져보면 대부분 최재석 교수가 위에서 인용한 항목에 다 걸린다. 일본 역사학자들은 그렇다고 치고 한국 역사학자들은? 그나마 이병도의 고이왕 건국설도 ‘조작’이라고 거품 물며 근초고왕 건국설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한국측 역사학자들, 광복 72년, 이들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절로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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