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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8월 9일 - 일왕 히로히토가 평화의 사도? 등록일 2017.09.27 21:41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1082
-동아시아 고대사는 첨예한 현대사

나는 늘 한국 고대사는 순수 고대사가 아니라 가장 첨예한 현대사라고 말해왔다. 영토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임정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성재 이시영 선생을 비롯해서 단재 신채호·위당 정인보·민세 안재홍 선생같은 독립운동가 겸 역사학자들이 모두 한국고대사를 연구했던 것은 호고(好古)의 취미가 아니었다. 이들은 한 손에는 총을 들고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한 영토전쟁을 치르는 한편 다른 손에는 붓을 들고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역사전쟁을 치렀다. 영토전쟁과 역사전쟁은 한 전선이었다.

-북한은 중국의 강역?

중국이 ‘느닷없이’ 2012년에 ‘한·중 경계의 역사적 변화(CRS)’라는 자료를 미 상원 조사국에 보낸 것이 아니다. 한사군의 강역이 북한지역이었으니 북한은 중국사의 강역이란 자료를 다른 곳도 아닌 미국 상원 조사국에 보낸 것이 순수한 학술행위겠는가? 미 상원에서 이 자료를 이명박 정부에 그대로 보내면서 견해를 물은 것 역시 이것이 순수한 학술행위가 아닌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2012년 당시 동북아재단 정모 이사장과 식민사학 카르텔 언론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독도 빠진 「동북아역사지도」의 제작책임자였던 임모 서울교대 교수와 주미대사관 1등 서기관 등을 미 상원에 보내 ‘한사군의 남쪽 한계는 황해도 재령강 연안과 강원도 북부’라는 내용의 자료를 전달한 것 역시 순수한 학술행위는 아니었다. 이들에 의해 중국은 황해도~강원도까지 차지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갖게 되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진핑의 말은 영토에 관한 이런 상황들이 국가 주석에게까지 정확하게 보고되는 나라가 중국이란 뜻이다. 한국고대사는 여전히 살아있는 현대사이자 영토사다.

-마르크 블로흐와 신채호

한국 근현대사는 진보의 관점으로 보면서도 고대사는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보는 ‘따로국밥 역사관’, ‘그때그때 달라요 역사관’이 통용되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브레즈네프 시절에 배운 극좌 전체주의 시각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비판하면서 고대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극우 전체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박노자가 진보로 행세할 수 있는 희한한 나라다. 나치가 침략하자 쉰도 넘은 나이에 자원입대해 총을 잡았던 프랑스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흐는 『봉건사회』라는 저서를 쓴 중세사학자다. 1944년 6월 나치에 총살당하는 마르크 블로흐의 일생과 1936년 2월 여순감옥에서 옥사한 신채호의 학문과 일생은 다른가? “단재 신채호는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라고 공식 학술회의 석상에서 말한 극우파 역사학자와 같은 신채호관을 갖고 있는 자칭 진보의 ‘따로국밥 역사관’, ‘그때그때 달라요 역사관’이 언제까지 통할 것 같은가?

-일왕 히로히토와 안창호, 이봉창 의사

김현구 씨는 백제 임금을 고대 야마토왜왕의 신하로 본다. 이런 관점을 히로히토에게까지 적용시킨다. 고대를 보는 관점과 근현대를 보는 관점이 일치한다는 점에서는 ‘따로국밥 역사관’의 짝퉁 진보보다 낫다. 자칭 진보라는 『역사비평』과 『한겨레 21』에서 훌륭한 역사학자라고 칭송한 김현구 씨가 일왕 히로히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평가했는지 살펴보자.
“결국 미국은 한 일본 연구가의 연구를 바탕으로 천황을 이용하여 700만 일본군을 저항없이 항복시킨 것이다. 그리고 공산혁명을 막고 일본으로 하여금 극동(極東)의 반공 보루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게 만들었다.(김현구,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 217쪽)
도산 안창호 선생은 죽음을 앞두고, “유인(裕仁:히로히토)야, 유인아, 네가 큰 죄를 지었구나”라고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낙심마오”라고 말하고 세상을 떠났다(1938. 3. 10) 이봉창 의사는 죽으러 떠나기 직전에 작성한 선서문에서 “나는 적성(赤誠)으로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라고 선서했다. ‘적국의 수괴’란 물론 일왕 히로히토다. 이봉창 의사는 폭탄이 일왕에게 명중하지 못했음에도 사형 당했다(1932. 10) 박근혜 표 국정교과서는 이봉창 의사 사진을 실으면서 이 선서문을 삭제했다. 박근혜를 비롯한 뉴라이트 극우세력들은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우겼는데, 선서문의 선언 날짜가 대한민국 13년(1931) 12월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1931년에 이미 대한민국 건국 13년이라고 인식했으니 선서문을 지운 것이다. 순국선열의 역사를 다루면서 최소한의 양심도 없다.

-일왕 히로히토가 평화의 사도?

김현구 씨는 일왕 히로히토가 700만 일본군을 저항 없이 항복시킨 평화의 사도이자, 공산혁명을 막고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만든 국제 반공전선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서술했다. 과연 그런가? 1945년 8월 15일 당시 일제는 과연 700만의 무장한 병력이 있었을까? 1942년의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공모함 4척과 비행기 300대 이상을 잃은 것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이후 태평양 각 섬에서 전멸하고 1945년 6월에 오키나와까지 점령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게다가 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것은 일종의 확인사살이었다. 미국의 원폭투하에 놀란 소련이 전리품 분배에서 불리해질까 8월 9일 전격적으로 대일전에 참전하자 그 전까지 자칭 ‘무적 황군, 무적 관동군’은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해체되었다. 일본 본토의 전쟁광들은 여학생들까지 제물로 내몰기 위해 죽창 훈련까지 시켰다. 이미 정상적인 군사시스템, 국가시스템은 모두 붕괴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김현구 씨는 ‘700만 일본군’을 평화의 사도인 일왕이 무장 해제 시킨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일왕은 전범이 아닌가? 

일왕 히로히토는 나중에 “자신은 전쟁에 책임 없다”는 변명을 해왔다. 과연 그런가? ‘메이지 헌법’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메이지 헌법의 제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 천황이 통치한다.”는 것이며, 제3조는 “천황은 신성하며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이고, 제4조는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괄한다”는 것이고, 제12조는 “천황은 육・ 해군의 편제 및 상비군의 숫자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메이지헌법에 따르면 일왕은 상징적인 국가원수가 아니라 “육·해군의 편제 및 상비군의 숫자”까지 결정하는 일본군의 최고 수뇌였다. 히틀러와 다를 바가 없다. 1930년대 소화(昭和)육군이라고 불렸던 일본 군부가 각종 쿠데타를 일으켰던 논리가 바로 자신들은 “내각에 속한 군대가 아니라 천황 직속의 군대”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왕은 메이지 헌법으로 보나 전쟁 진행과정으로 보나 완벽한 전범 1호다. 
그러나 일제 패전 후 미국이 동아시아의 정의 실현이란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지 않고 자국에게 유리한 반공의 보루란 관점으로 일본을 바라보면서 일본 극우파가 다시 부활했다. 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문제 등이 현재진행형인 이유나 조선총독부 역사관이 아직도 ‘정설, 통설’로 행세하고, 여기에 보수는 물론 이른바 진보라고 자칭하는 언론들까지 가세하는 뒤틀린 한국 사회 자화상의 뿌리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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