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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8월 18일 - 『삼국사기』 불신론이란 미스테리 등록일 2017.09.27 21:51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1146
-붕(崩)을 훙(薨)으로 낮추긴 했지만.

1971년 우연히 발견된 공주 무령왕릉의 지석은 백제 무령왕이 서기 523년 5월 붕(崩)했다고 쓰고 있다. 붕(崩)이란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용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릉 조는 재위 23년(523) 5월 훙(薨)했다고 적고 있다. 훙(薨)은 제후의 죽음을 뜻하는 용어다. 김부식은 무령왕의 죽음에 대해서 백제인들이 황제의 죽음인 붕(崩)이라고 쓴 것을 제후의 죽음인 훙(薨)이라고 낮춰 적었지만 사망 연도는 물론 달까지 일치해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삼국사기』는 고구려나 백제에 대한 어떤 사안들을 누락했을지는 몰라도 『일본서기』처럼 연대를 조작하거나 없던 일을 조작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학자들도 아닌 한국인 학자들이 광복 72년이 지나는 지금까지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따위를 신봉하는 것은 미스테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사기』 고등비판?

사실 미스테리일 것도 없다. 아직도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식민주의 근성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표 국정교과서를 적극 옹호해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되었던 전 동국대학교 교수 이기동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17대 내물왕 이전의 역사를 모두 부인하면서 김씨 성을 가진 내물왕부터가 신라 역사의 전부라고 주장했다. 근거는? 물론 없다, 그렇게 보고 싶다는 희망사항뿐이다. 이기동은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1980)』라는 책에서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초기기록은 진정한 의미에서 ‘고등비판(高等批判)’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식민사학자들의 용어에 휘말리다 보면 본질을 잃게 된다. 이기동이 말하는 ‘고등비판’이란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가짜라고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가짜라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보니 ‘고등’ 운운하는 말로 세상을 속이는 것뿐이다.

-실증사학? 그냥 우기는 것뿐

자신들의 머릿속 생각 외에 이들이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가짜로 모는 유일한 근거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스승들이 그렇게 주장했다는 것뿐이다. 쓰다 소키치나 이마니시 류, 스에마쓰 야스카즈 같은 스승들이다. 그 중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체계화했던 인물은 만주철도에서 돈을 받고 한국과 만주의 역사를 연구했던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다. 쓰다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상대(上代) 부분에 보이는 외국관계나 영토에 관한 기사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근거는? 물론 없다. 자기가 그렇게 믿고 싶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일제 식민사학이나 그 한국인 추종자들이 ‘정설, 또는 통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 학문이 아니다. 역사는 사료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학문인데, 일체의 사료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한사군 한반도설’뿐만 아니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도 아무런 사료적 근거가 없다. 실증사학? 웃기는 말이다. 식민사학계에 무슨 ‘실증’이 있나? 사료적 근거가 있는데도 그토록 토론을 기피하나? 그냥 우기는 것뿐이다. 역사학이 아니다. 굳이 ‘학’자를 붙인다면 카르텔학이다. 일본극우파 및 조선총독부 기레기 언론들과 굳은 카르텔을 형성한 카르텔학일 뿐이다.

-모든 길은 임나일본부로 통한다.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 「신라본기」뿐만 아니라 「고구려본기」, 「백제본기」도 모두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쓰다 소키치는 왜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모두 가짜로 몰았을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아니라 모든 길은 임나일본부로 통한다. 쓰다 소키치는 『조선역사지리』에 그 이유를 써 놓았다.
“(한반도) 남쪽의 그 일각(一角)에 지위를 점유하고 있던 것은 우리나라〔倭國:왜국〕였다. 변진(弁辰)의 한 나라인 가라(加羅)는 우리 보호국이었고 임나일본부가 그 땅에 설치되어 있었다(쓰다 소키치, 『조선역사지리』)”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반도 남부에 고대판 조선총독부인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삼국사기』는 가짜가 되어야 하고, 연대부터 맞지 않는 『일본서기』, 편찬자가 처음부터 거짓말을 쓰려고 마음 먹고 왜곡한 『일본서기』는 진짜가 되어야 한다. 복잡할 것이 없다.

-총론 비판, 각론 추종

‘가야=임나설’도 모두 이 때문이다. “모든 길은 임나로 통한다”, 이것이 절대명제다. 그나마 쓰다 소키치는 지도에서 임나를 경상도 김해 지방으로 한정했는데, 조선총독부의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전라도까지 확대시켰다. 근거는? 물론 없다. 그런데 김현구 씨는 임나의 위치에 대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명 비정(比定)은 스에마쓰 설을 따랐다(『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43쪽)”라고 썼다. 총론에서는 비판하는 척하지만 각론에서는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추종하는 ‘총론 비판, 각론 추종’은 한국 식민사학의 생존술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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