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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8월3일- 김현구 씨가 보는 스에마쓰와 김석형 등록일 2017.09.27 21:04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1178
-무령왕이 오경박사를 공물로 바쳤다고?

1963년 북한의 김석형이 「삼한삼국의 일본열도 내 분국에 대하여(『역사과학』)」라는 논문으로 
주장한 ‘분국설(分國說)’은 일본 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고구려·백제·신라·가라 등에 대한 기사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와 다르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한 예로 『일본서기』에는 646년(대화 2년)에 고구려·백제·임나·신라가 야마토왜에 사신을 보내서 세금을 바쳤다고 쓰고 있다. 고구려 보장왕은 한 해 전 당 태종의 친정군을 격파하고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우뚝 선 상황이었다. 이런 고구려가 야마토왜에 사신을 보내 세금을 바쳤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그래서 김석형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고구려·백제·신라·가라 등의 나라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이 일본 열도에 진출한 분국, 소국이라는 분국설을 주창했던 것이다. 
그런데 김현구 씨는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일본서기』 기사까지 모두 사실로 믿고 있다. 김현구 씨는 박사학위 논문의 「표1」에서 “흠명(欽明) 원년(540) 8월, 고구려·백제·신라·임나가 조공사(調貢使)를 바쳤다〔高·百·新·任の 調貢使〕”라고 썼다. 조공사(調貢使)란 세금을 바치러 간 사신이란 뜻으로 고구려·백제·신라가 야마토왜의 속국임을 뜻한다. 김현구 씨는 또한 계체(繼體) 7년(513)에는 ‘백제에서 오경박사를 공물로 바쳤다〔貢五經博士〕’고 ‘바칠 공(貢)자’를 썼다. 이해는 백제 무령왕 13년인데, 1971년 공주에서 발견된 무령왕릉의 지석은 백제인들이 무령왕의 죽음을 제후의 죽음을 뜻하는 ‘훙(薨)’자가 아니라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붕(崩)’자로 썼다. 백제인들 스스로가 백제는 황제의 나라라고 인식했는데도 김현구 씨의 눈에는 야마토왜에 오경박사를 공물로 바치는 신하의 나라로 보이는 것이다.

-최재석 교수의 비판

그래서 고려대학교의 고 최재석 교수께서 김현구 씨에 대해서 이렇게 비판했다.
“한국(백제)의 왕이 일본을 경영하려고 파견한 사인(使人)도 김현구 씨는 언제나 조공사(朝貢使)로 표현하고 있으며 『일본서기』의 기사 가운데 사실을 기록한 기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왜곡기사인 ‘조공사’ 기사만을 가지고 한국이 일본의 속국 내지 식민지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 그는 누가 보아도 조작 기사임이 분명한 기사, 예를 들면 고구려, 백제, 신라, 미마나(任那:임나) 등 한반도의 여러 나라가 동시에 일본에 조공하였다는 『일본서기』의 기사도 사실로 간주하고 있다(최재석, 『역경의 행운』, 만권당, 245쪽)”

-위치비정은 스에마쓰설을 따랐다고?

자랑스런 대한민국 검찰이 피고를 기소한 이유 중의 하나가 내가 김현구 씨에 대해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지 않고 있다”라고 했다는 것도 들어있다. 그런데 김현구 씨 자신이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고전적인 정의를 내린 사람은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스에마쯔 야스까즈(末松保和)였다(16쪽)”라고 높이 평가했다. 임나에 대한 논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임나의 위치비정이다. 임나가 경상도에서 전라도까지 걸쳐 있었다고 제멋대로 비정한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견해를 김현구 씨는 ‘고전적인 정의’라고 극찬한다. 김현구 씨는 임나의 위치에 대해서 같은 책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명 비정(比定)은 스에마쓰 설을 따랐다(43쪽)”라고 명기해서, 스에마쓰의 충실한 교도임을 스스로 선언했다.

-김석형에 대한 저주

스에마쓰의 식민사학을 ‘고전적인 정의’라고 극찬한 김현구 씨는 분국설을 제창한 북한의 김석형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평가했을까?
“김석형의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내 분국론’은 관련자료를 일방적으로 한국 측에 유리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는 『일본서기』를 일본 측에 유리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야마또정권의 한반도 남부경영론을 만들어낸 스에마쯔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74쪽)”
김현구 씨가 “『일본서기』를 일본 측에 유리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스에마쓰의 위치비정을 그대로 추종한다는 사실은 이미 살폈다. 김현구 씨는 김석형이 “관련자료를 일방적으로 한국 측에 유리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김현구 씨의 눈에 한일고대사를 한국측에 유리하게 해석하면 비난의 대상이 된다. 자신처럼 임나가 경상도부터 전라도에 걸쳐 있었다는 스에마쓰의 해석을 추종하지 않으면 비난의 대상이 된다. 임나 위치비정에 있어서 김현구 씨는 스에마쓰와 100%의 일치율을 보이고 있다. 
패전 후에도 반성은커녕 학습원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제국의 신민들이여, 좌절하지 말라, 우리 대일본제국은 한국을 다시 점령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임나흥망사(1949년)』를 저술한 일본 극우파 스에마쓰의 ‘고전적 정의(?)’를 비판하는 학자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임나의 위치는 스에마쓰설이 곧 김현구 설인데, 그럼 스에마쓰가 임나를 한반도 내로 비정한 근거를 살펴보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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