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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7월 4일 - 『삼국사기』 불신론이란 유령 등록일 2017.09.27 19:39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1072
-총론은 폐기, 각론은 추종

사실 일반 국민들은 ‘낙랑군=평양설’보다 이른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더 놀라는 경우가 많다. 말이 좋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지 ‘『삼국사기』 전체 기록 불신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론이다. 국회 동북아특위에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측 대표로 나왔던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는 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그것(『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이미 한국 학계에서 폐기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믿지 않는다? 아무도 없습니다.”

이들은 늘 총론으로는 식민사학을 극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식민사학 일색이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다른 의원이 홍익대 김태식 교수가 한일역사연구공동위원회에서 발표했던 내용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백제가 고이왕 때 건국되었다는 것은)후세 백제인들의 고이왕 중시 관념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다. 이 시기 백제의 발전 정도는 좀 더 낮추어 보아야 할 것이다.(김태식,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2005년)”

『삼국사기』는 백제가 서기전 18년에 온조대왕이 건국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쓰다 소키치는 13대 근초고왕(재위 346~375) 때 건국되었다고 아무런 근거 없이 우겼다. 이를 서울대 이병도 교수가 8대 고이왕(재위 236~286) 때 건국되었다고 100년 정도 끌어올렸는데, 그 후학인 김태식이 고이왕 건국설도 ‘조작’이라면서 근초고왕이 건국했다고 서술한 것이다. 임기환은 앞서 ‘한국학계에서 폐기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잊어 먹었는지 ‘학계의 견해와 배치되지 않습니다’라고 모순되게 답변해 의원들을 경악하게 했다. 김태식은 ‘임나는 가야의 별칭’이라는 희한하고도 위험한 주장을 하는 학자인데, 중요한 것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 아무런 학문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 온조왕 13년(서기전 6년)조에 “왕의 모후 세상을 떠났다”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이 조작이라고 주장하려면 서기전 6년 이후에도 “왕의 모후가 살아 있다”라고 쓴 다른 역사서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 두 책을 사료비판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역사학적 방법론이다. 물론 그런 사료가 있을 리가 없다. 그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임나일본부를 한반도 남부에 설치하는데 방해가 되는 “『삼국사기』는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을 지금까지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논리의 전부다.

-반대급부는 무엇이었을까?

이 대목에서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에 잘 보여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서 따랐겠지만 해방 후에는 왜 저러는 것일까? 서울대학교 사학과에서 연세대학교로 이직해서 정년을 마친 김용섭 교수의 자서전에 서울대 교수 시절 겪었던 일화에 그 이유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한번은, 분명치는 않으나, 민족주의 역사학인가, 실증주의 역사학인가에 관하여 검토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교학부장 고윤석 교수도 포함된 네댓 명의 중년·노년의 교수가 내방하였다. 노크를 하기에 문을 열었더니, 김원룡 교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제 때 경성제대에서 내가 배운 스에마쓰(末松保和) 선생님인데, 김 선생 강의를 참관코자 하시기에 모시고 왔어요. 김 선생, 되겠지?” 하는 것이었다.(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768쪽)」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는 조선총독부 직속 조선사편수회 간사였다. 일제 패망 후에는 일본의 귀족들을 교육시키는 학습원대학의 교수가 되어 임나가 경상도는 물론 전라도까지 장악했다는 『임나흥망사(1949)』를 저술한 인물이다.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는 나도 이 대목을 보고는 크게 놀랐다. 해방 후에도 조선사편수회 말종들이 국내를 들락랄락하면서 한국 학자들을 지도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스에마쓰가 국내에 올 때 맨 손으로 왔을까? 그럴리는 없다. 일본 극우파는 돈이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이용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해방 후에도 한국 학자들은 조선사편수회 출신으로부터 직접 방문지도를 받았다. 여기에는 상당한 반대급부가 뒤따랐을 것임은 물론이다. 바로 이 반대급부를 알지 못하면 식민사학은 극복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뿌리 깊은 친일적폐임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