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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0610 - 중국 1차 사료로 보는 고조선과 낙랑군의 위치 등록일 2017.09.19 10:55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2195
*근래 각종 언론, 방송 등에서 낙랑군과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 이른바 강단사학의 주장을 아무런 검증없이 일방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 중국 1차사료를 아주 조금만 살펴봅니다.

1)《사기》 〈조선열전〉

《사기》 〈조선 열전〉은 위만이 동쪽으로 달려서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넜다〔東走出塞, 渡浿水〕”고 설명하고 있음. 패수를 동쪽으로 건너려면 패수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야 함. 이른바 강단사학계는 패수를 압록강(노태돈), 청천강(이병도) 등으로 비정하고 위만 조선의 수도를 평양이라고 주장하는데, 압록강이나 청천강 등이 패수라면 남쪽으로 건너야지 동쪽으로 건너서 평양으로 갈 수는 없음. 압록강을 동쪽으로 건너면 함경도고, 청천강은 동쪽으로 건널 수도 없지만 설혹 건너도 강원도임. 그래서 중국의 고대 지리서인 《수경》은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나와서 동남쪽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浿水出樂浪鏤方縣,東南過臨浿縣,東入于海) (《수경(水經)》 패수(浿水)〕”라고 남북으로 흐르는 강이라고 말한 것임. 즉 한반도 북부의 강들은 동에서 서로 흐르지 남북으로 흐르는 강이 없음. 패수는 지금의 하북성 일대를 남북으로 흐르는 강이라는 뜻. 이병도는 패수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쓴 것은 서(西)자를 동(東)자로 잘못 쓴 것이라면서 ‘패수는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원문을 고쳤음. 역사학이 아니라 천지창조학임. 이런 것이 현재 강단 사학계가 신봉하는 정설이자 통설이며 이런 것이 사이비, 유사역사학임.

2) 《한서》 〈가연지 열전〉

《한서(漢書)》 〈가연지(賈捐之)열전〉: “(한나라 강역이)동쪽으로는 갈석을 지나 현도, 낙랑으로써 군을 삼았다.”(東過碣石以玄菟、樂浪為郡)라고 말하고 있음.
해설: 가연지(賈捐之:?~서기전 43년)는 상서령(尙書令)을 역임한 인물로서 낙랑군을 세운 지 50여년 후의 인물. 갈석산 부근에 낙랑군과 현도군이 있었다는 뜻. 갈석산은 현재 중국 하북성 창려현에 있음. 9명의 황제가 올랐다고 해서 ‘9등황제산’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산. 이른바 강단 사학계 정설처럼 평양이 낙랑이면 평양 부근에 갈석산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평양 어디에 갈석산이 있나? 움직일 수 없는 유적까지 무시하고 낙랑군을 평양이라고 우기는 이른바 강단 사학계가 이른바 사이비 역사학, 유사역사학임.

3)《한서》 〈지리지〉

낙랑군 및 《후한서》 〈군국지〉 낙랑군에서 말하는 낙랑군 열구현의 위치
《한서》 〈지리지〉에는 낙랑군 산하의 열구현(樂浪郡, 列口縣)이 나오는데, 《후한서》 〈군국지〉는 “곽박이 《산해경》 주석에서 말하기를, ‘열은 강이름이다. 열수는 요동에 있다’〔列口(郭璞注山海經曰, “列, 水名, 列水在遼東”)〕라고 말했다고 적고 있음.
낙랑군에는 25개의 속현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열구현임. 열수라는 강의 하구에 있어서 열구현이라고 불렀음. 그 열수는 요동에 있다는 것. 이병도는 열수를 대동강이라고 주장했는데, 언제부터 대동강이 있는 평안도가 요동이 되었나? 《한서》는 반고(班固:서기 32년~서기92년)가 지은 전한(前漢:서기전 302년~서기 220년)의 역사서이고, 《후한서》는 남조(南朝) 송(宋:420~479)의 범엽(范曄:398~445)이 지은 후한(後漢:서기 25년~220년)의 역사서인데, 이 역사서들은 모두 낙랑군이 평양이 아니라 갈석산 부근에 있으며 패수 역시 이 부근에서 남북으로 흐르는 강이었다고 말하고 있음. 이런 사료를 모두 무시하고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강단사학계가 유사, 사이비 역사학임.

4)《후한서》 〈광무제본기〉

《후한서(後漢書)》 〈광무제본기〉에는 “처음에 낙랑사람 왕조가 군을 근거로 불복했다.(낙랑군은 옛 (고)조선국이다. 요동에 있다)〔樂浪 人王調據郡不服(樂浪郡, 故朝鮮國也, 在遼東〕”라고 말하고 있음. 낙랑 사람 왕조가 낙랑군을 근거로 불복했는데, 그 낙랑군은 고대 요동에 있다고 말함. 이때의 요동은 현재의 요동이 아니라 지금의 하북성 일대임. 언제부터 평양이 요동이 되었는가? 이런 구체적 사료를 모른 체 하고 낙랑군을 평양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강단사학계가 사이비, 유사역사학임.

5) 《후한서》 〈배인 열전〉

《후한서》 〈배인 열전〉은 배인을 “장잠현의 현령으로 삼았다(장잠현은 낙랑군 산하인데, 그 땅은 요동에 있다〔出爲長岑長〔長岑縣, 屬樂浪郡, 其地在遼東〕”라고 말하고 있음. 낙랑군 소속의 장잠현은 요동에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음. 이른바 강단사학계는 자신들이 이런 사료를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면 통할 것으로 생각하고 낙랑이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 언제부터 평양이 요동이 되었나? 이성계는 평양이 요동인 것을 모르고 요동 정벌하러 위화도로 올라갔는가?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낙랑을 평양이라고 사료 없이 우기는 이른바 강단사학계가 사이비, 유사, 대국민 사기학임.

6)《태강지리지》

《태강지리지》에서 말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기점이다〔《太康地理志》云, “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라고 말하고 있음(《사기》 〈하 본기〉 주석)
태강(太康)은 진(晋)나라 무제가 서기 280년 남방의 오나라를 꺾고 중원을 통일한 기념으로 연호를 태강으로 고치고 전국적인 행정조직을 관할하기 위해서 역사지리지인 《태강지리지》를 만든 것임. 갈석산은 현재 하북성 창려현에 있음. 이런 중국의 1차 사료를 모두 모른 체하고 낙랑군이 평양이라고 우기는 것이 이른바 강단 사학계의 정설이자, 통설임. 한마디로 사이비, 유사역사학이고, 대국민 사기극임. 

이외에도 낙랑군이 현재의 하북성 일대에 있었다고 말하는 중국 사료는 부지기수임. 그럼에도 이런 강단 사학계에 놀아나는 기자는 두 부류임. 하나는 식민사학과 카르텔이 되어서 식민사학측 선수로 뛰는 무늬만 기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진실을 찾아서 보도할 생각을 안 하고 다른 설에 대한 팩트체크도 안하고 대학교수들이 하는 말이니까 맞겠지 하고 보도하는 나태한 기자들임. 물론 이들과 달리 진실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기자들도 많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음. 그러나 역사문제를 다루는 기자들 중에 이런 기자를 찾기가 힘든 것은 사실임. 역사 문제는 1차 사료를 찾아서 확인해 볼 정도로 수준 높은 독자나 시청자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함. 이른바 강단사학에서 꼭 “토론은 안 합니다”라고 덧붙이는 것은 평양을 낙랑이라고 말하는 1차 사료가 없다보니까 토론하면 뒤가 켕겨서 나온 자기방어술임. 기자면 직감으로 ‘이 사람들이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구나’라고 감지하고 후속 취재를 해야 하는데, ‘맞겠지 뭐’하고 일방적으로 보도하니 이 문제에 해박한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무시당하거나 분노를 사게 되는 것임. 이제는 굳이 언론을 통하지 않아도 한 사람이 수십 만, 수백 만 명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겸손한 자세로 역사문제 보도에 임하기를 요망함. 이 문제에 대해서 정설, 통설 운운하는 대학교수들보다 뛰어난 역사 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 시청자가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바른 보도로 가는 첫걸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