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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6월 16일 - 고조선 산성을 찾아서 등록일 2017.09.27 18:47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1579
내몽골 지역에는 고조선 산성들이 많다. 중국의 성들은 대부분 벽돌로 쌓는데 비해서 우리식 성들은 모두 자연석을 다듬어서 쌓는데, 그런 산성들이다. 몇 년 전 내몽골 적봉시의 두 산성을 찾아 나선 답사길. 내몽골 적봉시 송산구(松山區)의 삼좌점(三座店) 산성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초두랑진(初頭朗鎭)에 가서 저수지를 찾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성자산(城子山)산성은 찾기가 난감했다. 윤가점(尹家店)산성이라고도 불려서 윤가점을 찾으면 될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았다. 전날 저녁 적봉시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여러 곳에 문의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현지에 가서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뜻밖에도 현지 여행사 사장이 아는 사람을 찾았다고 기뻐했다. 이 여행사 대표는 우리를 몇 번 안내하다가 우리 답사 방식에 크게 감동해서 한국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아침에 운동하러 나갔다가 중산복 차림의 한 노인에게 물었더니 마침 몇 년 전에 적봉시 문화유적 선정 위원으로서 선정 작업에 참가했다는 것이었다. 총면적 9만 평방 km에 인구가 460만 명인 적봉시에서 우연히 길에서 유적 선정위원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편하게 두 산성을 찾았다. 특히 성자산 산성은 이 분이 없었으면 찾지 못했거나 찾았어도 숱한 고생을 했을 것이다. 인적은 물론 차량 통행도 뜸한 지방도를 달리다가 어느 지점에서 우측으로 꺾어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면 찾을 수가 난감한 곳이었다. 두 산성은 모두 꽤 높은 산 정상에 있었다. 터키 파묵칼레 산 정상의 로마성이 연상되었다. 삼좌점 산성은 중국에서도 홍산문화 중의 하가점 하층문화에 속하는 4000여 년 전의 산성이라고 인정한다. 자연석의 한쪽 면을 다듬어 쌓는 우리 전통의 축성 방식과 일치하는 우리식 산성이다. 산성의 둥근 돌출부를 우리는 치(雉)라고 부르는데, 중국은 말머리처럼 튀어나왔다고 해서 마면(馬面)이라고 부르는데 15개가 있다.
 
나는 2016년 여름 한 달 반 사이에 삼좌점 산성을 두 번이나 가봤다. 한 번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정기 답사였고, 다른 한 번은 우여곡절 끝에 동북아역사재단 주최의 강단 사학자들과 요서지역 현장토론회였다. 한가람답사 때 공안(公安)이 쫓아 올라와서 조사하는 것이 심상치 않았는데 이후 전문 감시원을 배치해서 산성의 일부분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강단측의 인천도시개발공사 윤모 박사가 느닷없이 ‘이것은 산성이 아니라 집터’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와 본 유적을 처음 와본 윤박사가 조사하기도 전에 부인부터 했다. 우리측의 문성재 박사가 ‘윤박사 눈에는 이것이 집터로 보이나? 근거를 대라’고 따지자 세미나 때 답변하겠다고 발뺌하더니 끝내 설명하지 못했다. 초등학생의 눈에도 산성인 것을 고고학 박사라는 사람이 집터라니 기가 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은 현지답사를 다녀도 ‘어떻게 하면 한국사와 연관성을 부인할까?’하는 생각만 머릿 속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이 사람들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겸 한번은 같이 가볼만했지만 다시 가라면? 사양하겠다. 원래 답사의 저녁은 선조들의 자취를 찾은 감동의 대화가 오가는 법인데, 어떻게 하면 ‘선조’의 흔적을 지울까 고심하는 사람들과 두 번 다닐 답사는 아니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측에서 간 모든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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