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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7월 28일 - 현구 씨는 왜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모를까? 등록일 2017.09.27 20:19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1856
-식민사학자를 가리는 아주 간단한 방법

『한겨레 21』 편집장 길윤형은 『조선일보』에서 ‘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 이라고 추켜세운 위가야의 입을 빌려 김현구 씨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지 않았는데 내가 김현구 씨의 책을 오독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역시 이번에도 상대방에 대한 반론 청취 따위는 전혀 없다. 언론이 아니라 독자에게 사기치는 사설(詐說)이고,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해치는 사설(邪說)이다. 그러나 길윤형이 알면서 그러는지 모르면서 그러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김현구 씨를 옹호하면 할수록 더욱더 일본 극우파의 역사관을 옹호하는 수렁에 빠져든다. 이제 이 분야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한·일 고대사학계에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란 유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삼국사기』를 가짜로 몰아서 임나일본부설을 사실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서기』는 빨라야 서기 3세기 말에야 시작하는 일본의 역사를 서기전 660년에 시작하는 것으로 무려 1천년 이상 끌어올렸기 때문에 연대부터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기 전까지는 일본인 역사학자들도 『일본서기』의 연대를 『삼국사기』와 비교해 사실인지, 가짜인지 여부를 가렸었다. 그러다가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 등이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만들고, 『일본서기』를 사실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삼국사기』의 눈으로 보면 임나일본부설 자체가 성립될 수 없기에 『삼국사기』를 가짜로 몰고 연대부터 맞지 않는 『일본서기』만을 믿어야 한다고 우긴 것이다. 그래서 『삼국사기』의 눈으로 한일(韓日)고대사를 보느냐? 아니면 『일본서기』의 눈으로 일한(日韓)고대사를 보느냐? 하는 점은 식민사학자 여부를 가리는 가장 기초적인 시험지이다. 그럼 길윤형과 위가야 등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김현구 씨는 어느 시각으로 한일고대사를 보는지 살펴보자.

-『삼국사기』·『삼국유사』를 모른다는 김현구 씨

김현구 씨가 검찰측 증인으로 재판정에 나왔을 때 일이다. 나는 김현구 씨에게 그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 유일한 근거로 사용하는 『일본서기』 내용이 『삼국사기』의 내용과 전혀 다르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김현구씨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답변을 했다.
“나는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모릅니다.”
김현구 씨의 이 솔직한 답변에 재판정이 일순 웃음바다가 되었다. 묻지도 않은 『삼국유사』까지 왜 모른다고 자백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한(日韓)고대사 전공이라는 사람이 『삼국사기』·『삼국유사』를 모른다고 선언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른다기 보다는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믿지 않고, 『일본서기』만 믿겠다는 고백이었다. 고려대 명예교수셨던 최재석 교수께서 『역경의 행운(2015, 만권당)이란 자서전에서 같은 고려대 교수였던 김현구씨의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김현구 씨의 학위논문 제목부터 살펴보자. 김현구 씨는 시종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 논문 제목은 한국이라는 국명은 쑥 빼버리고 “야마토(大和)정권의 대외관계 연구”라고 한 데서 김현구 씨의 역사관이나 역사 서술의 핵심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고 하겠다. 교섭 상대국의 국명이 제거된 ‘야마토 정권의 대외관계’라는 용어 속에는 그 이름조차 거명할 가치조차 없는 나라와 야마토 정권의 관계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그러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사는 일본사에 예속되어 있거나 한국사는 일본사의 일부라는 뜻을 논문 제목에 반영시킨 것이다(최재석, 『역경의 행운』, 244쪽)」

-코리안 히스토리가 아니라 니뽄히스토리

최재석 교수는 한국 고대사학자들 상당수가 코리안 히스토리안이 아니라 니뽄(Nippon:일본) 히스토리안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하고 계셨던 것이다. 검찰이 나를 기소한 사항 중의 하나가 내가 김현구 씨에 대해 “『일본서기』를 사실로 믿고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인데, 김현구 씨 자신이 『일본서기』만을 믿는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답변이 나온 맥락이 있다. 위 답변은 내가 서기 371년의 기록에 대해서 김현구씨가 인용하는 『일본서기』 기록과 『삼국사기』 기록이 전혀 다르지 않느냐고 따지는 과정에서 나온 답변이다.

-중흥군주 근초고왕인가 야마토왜의 종 근초고왕인가?

『일본서기』는 서기 371년에 야마토왜에서 사신이 오자 백제의 근초고왕과 근구수 부자가 이마를 땅에 대고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반면 『삼국사기』에는 같은 해 근초고왕이 정예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그 2년 전인 369년에는 고구려 군사 2만 명이 침입하자 근초고왕이 태자 근구수를 보내 격파하고 5천 명의 머리를 베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같은 해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사를 사열했는데 모두 황색 깃발을 사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황색 깃발은 황제가 사용하는 깃발이다. 『삼국사기』에서 말하는 근초고왕은 황제의 깃발을 휘날리며, 고구려 평양성까지 쳐들어가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중흥군주다. 반면 『일본서기』에서 그리는 근초고왕은 야마토왜의 사신에게 아들까지 데리고 머리를 땅바닥에 대고 충성을 맹세하는 종의 모습이다. 물론 김현구 씨는 『일본서기』에서 그리는 근초고왕 부자의 모습을 사실로 믿고 있다. 그 모순점을 따졌더니 김현구 씨가 당당하게 밝힌 소신이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러니 『삼국사기』의 눈으로 한일(韓日)고대사를 보는 것과 『일본서기』의 눈으로 일한(日韓)고대사를 보는 것은 양립될 수 없다. 둘 중의 하나는 거짓말이다.

-『일본서기』의 일방적 주장

어느 사료가 거짓말인지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라서 사료비판을 해보자.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26년(371)조에 나오는 고국원왕 전사 사건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41년(371)조에 의해서도 사실로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중국의 『위서(魏書)』와 『북사(北史)』에도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반면 근초고왕 부자가 야마토왜의 사신에게 이마를 땅바닥에 대고 절했다는 『일본서기』 기록은 사실임을 증명할 일체의 다른 사료가 없다. 6세기나 되어야 제철기술이 생겼던 야마토왜의 사회상황을 봐도 백제왕이 야마토왜의 사신에게 머리를 땅에 대고 절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김현구 씨가 거꾸로 나를 초등학생 수준이라는 명분(?)으로 토론을 거부하는 것은 이런 이유들이 있는 것이다. 물론 총론에서는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척하지만 각론에 들아가면 김현구 씨의 저서에는 이런 모순이 수를 셀 수도 없이 많다. 앞으로 서술하겠지만 『일본서기』까지도 왜곡해서 백제를 야마토왜의 식민지로 조작했다.

-『한겨레 21』의 종착역은?

『한겨레 21』 편집장 길윤형이 김현구 씨를 옹호하고 나를 매도함으로써 이땅에 일본 극우파 역사관을 전파시키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그런 악질적 의도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의 본질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길윤형이 왜 그렇게 일본 극우파 역사관 전파에 안달인가 하는 점이다. 일본에 다녀온 후 일본 극우파의 전사가 되어 ‘식민지 근대화론’ 따위를 제창했던 서울대 안 모 교수의 사례가 절로 떠오른다. 평생을 한일 식민사학자들의 식민사학에 맞서 싸우셨던 최재석 교수의 말이 그 분의 혜안을 말해준다.
“김현구 교수의 역사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고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그의 역사의식을 배우게 된다고 생각하니 심히 염려스럽다(최재석, 『역경의 행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