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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7월 15일 - 답사의 시공간 등록일 2017.09.27 19:51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960
-역사의 시공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정기 답사 중이다. 매년 한 두 차례씩 중국 오지 답사를 다니는데, 우리처럼 중국 오지를 많이 다닌 사람들을 찾기도 힘들 것이다. 중국 오지는 인터넷이 잘 연결 안 되는데다가 중국은 페이스북 자체를 막아놔서 글 올리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중국 오지 답사를 다니는 것은 시간의 역사를 공간의 역사와 일치시키기 위해서이다. 역사는 시간과 공간의 결합으로 완성되는 학문이다. 역사에서 시간의 개념은 공간과 일치할 때 완결성을 갖는다.
조선 왕조의 도읍은 한양이라는 사실은 시간과 공간이 일치한다. 한사군의 낙랑군 위치문제도 시공간이 일치해야 한다. 『조선일보』에서 ‘무서운 아이들’이란 닉네임을 붙여주자 기세가 등등해진 안정준은 『한국일보(2017년 6월4일자)』와의 인터뷰에서,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는 건 우리뿐 아니라 제대로 된 학자는 모두 동의한다. 100년 전에 이미 논증이 다 끝났다.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 인터뷰도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에 기자 인생을 건 조태성이 주도했다.

-시공간의 불일치

기경량은 100년 전 조선총독부 시절 ‘논증이 다 끝났다’고 우긴다. 시간이 맞지 않는다. 그가 논증이 다 끝났다고 말한 시간, 즉 100년 전 조선총독부 시절은 낙랑군이 실제로 설치되었던 서기전 1세기와는 이미 2천년 이상의 차이가 난다. 또 다른 ‘무서운 아이들’인 기경량은 “그러면 200년 전 조선 실학자들이 논증을 끝냈다라고 하자.”라고 100년을 더 끌어올렸지만 시간의 불일치는 마찬가지다. 2000년 전에 설치된 낙랑군의 위치는 100년 전 조선총독부나 200년 전 조선의 실학자들의 주장으로 시간과 공간이 일치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물며 안정준이 말한 100년 전에 이미 조선총독부에서 끝냈다는 ‘낙랑군=평양설’을 일관되게 부정한 여러 민족 사학자들이 있었고, 200년 전에도 ‘낙랑군=평양설’을 부인했던 연암 박지원을 비롯해서 그 선배인 성호 이익 등 여러 학자들이 있었다. 안정준과 기경량의 말은 객관적 실체는 부정하고 그렇게 믿고 싶다는 자기 주술에 다름 아니다.
-사학(史學)이 아닌 사학(詐學)
더구나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사기라는 사실을 아는 ‘무서운 아이들’이다. 북한에서 일제강점기보다 70배 이상 많은 2600여기의 무덤을 발굴한 결과 한사군의 무덤을 단 하나도 못 찾았다고 발표한 것을 안정준은 북한의 고고학 발굴 결과 ‘낙랑군=평양설’이 입증되었다고 사기쳤다. 기경량도 자세히 보면 「동북아역사지도」에 독도가 보인다고 사기 쳤다. 사학(史學)이 아닌 사학(詐學)이다.
‘무서운 아이들’이 학문의 엄정한 세계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사기술부터 배운 것이 이 나라의 미래를 암담하게 해 주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아이들에게 사기술을 가르친 그 선배, 스승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자리를 미끼로 홍위병들을 내세운 것은 그들 자신의 주장이 사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너무 멀리 왔다는 점이다.

-조선총독부의 교리 신봉

조선총독부에서 확립시킨 ‘낙랑군=평양설’을 해방 72년이 넘도록 하나뿐인 교리로 신앙한 결과 “‘낙랑군=평양설’이 무너지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각종 사료는 낙랑군은 하북성에 있었다고 일관되게 말해주고 있다. 또한 낙랑군의 상급 행정기관인 유주(幽州)는 지금의 북경인데, 도청은 북경에 있고, 군청은 평양에 있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시공간이 모두 맞지 않는다.
그러자 고고학으로 도망갔는데 매국 갱단사학계 고고학의 대부인 세키노 타다시가 북경의 골동품상가인 유리창가에서 ‘한나라 유물과 낙랑유물을 마구 사들여 총독부에 보냈다’고 일기에 썼다. 진퇴양난이다. 그래서 매국 갱단사학계와 카르텔을 형성한 좌우 언론을 총동원해 총독부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사이비, 유사역사학’이라고 매도해서 죽이려 했지만 이미 이 문제의 프레임을 알게 된 다수 독자들 때문에 실패했다. 매국 갱단사학계가 또 무슨 프레임을 들고 나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할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