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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7월 22일 - 동북아역사재단은 왜 동북공정 한국지부가 되었나? 등록일 2017.09.27 20:10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970
-대한민국 국가기관의 비극적 자화상,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해 동북공정 한국지부, 일본 극우파 한국지부라는 비판이 거세다. 내부를 매국 갱단사학자들이 장악한 결과다. 처음 재단을 만들 때의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 중국과 일본의 역사침탈에 대응하는 학문적 논리를 세우라는 좋은 뜻에서 만든 재단이다. 한국인 학자들이 대한민국의 역사적 국익을 수호하리라는 소박한 믿음에 기초한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 때 행자부 장관으로 재단 설립 아이디어를 냈던 허성관 미사협 상임대표가 “식민사학자들에게 사기 당한 노무현 정권”이란 신문 칼럼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산 정약용은 문왕·주공·공자처럼 동양 유학사회에서 성인으로 추앙 받는 인물들이 『주역(周易)』을 편찬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일은 공정한 선의에서 나왔지만 그 일의 성패 화복은 역도(逆睹: 사물의 결말을 미리 내다봄)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이에 비로소 천명에 청하는 것이다(「역론(易論) 2」)”
공정한 선의에서 어떤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그 일의 성패를 미리 알 수 없을 때 하늘에 미래를 묻기 위해서 성인들이 『주역』을 썼다는 뜻이다. 노무현 정권 때 『주역』에 정통한 고위관료가 있었다면 동북아역사재단이 이렇게 망가지리라는 사실을 미리보고 대응할 수 있었을까?

-위만조선의 왕성이 평양?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진핑 발언의 진앙지가 국내 매국 갱단사학계이고, 조선총독부라는 사실은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 한 예로 동북아역사재단은 2009년 홈페이지에 이렇게 게재하고 있었다.
“위만조선은 그 왕성인 ①왕험성(王險城)이 현재의 평양시 대동강 북안에 있었는데, 이는 위만조선과 한의 경계 역할을 한 ②패수(浿水)가 지금의 압록강이라는 점, 위만조선의 도읍 부근에 설치된 ③낙랑군 조선현의 치소가 지금의 평양시 대동강 남안의 토성동 토성이라는 점, 왕험성 및 조선현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④열수(列水)가 지금의 대동강으로 비정되고 있다든지 하는 점을 통해서 입증된다(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 ‘고조선조’)」
동북아재단은 ①~④를 근거로 제시한 후 “입증된다”라는 비인문학적 용어까지 동원했다. 매국 갱단사학에서 ‘입증된다’, 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단정하면 ‘근거가 없구나’라고 해석하면 된다고 이미 말했다. 이 네 가지 논리도 마찬가지다. 지면상 핵심만 말하고 자세한 논리는 나중을 기약하겠다.

-중국에서도 위만조선의 왕성은 요녕성에 있다고 말한다.

첫째, 동북아역사재단은 ‘위만조선의 왕성인 왕험성이 현재의 평양시 대동강 북안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의 정사인 『한서』 「지리지」는 왕험성 자리에는 ‘낙랑군’ 산하가 아니라 ‘요동군’ 산하 험독현을 세웠다고 서술했다. 그 험독현에 대해서 응소(應劭)는 “조선왕 위만의 도읍지다〔朝鮮王滿都也〕”라고 주석했다. 응소는 후한 영제 중평(中平) 6년(184년) 태산태수를 역임한 인물이다. 즉 매국 갱단사학에서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하던 시기에 생존했던 학자 겸 정치가가 위만조선 도읍지에 세운 험독현이 요동군에 있었다고 고증했으니 “평양시 대동강 북안” 운운은 헛소리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