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혁신으로 꿈을 현실로 만드는 세상!

학술 이야기

  • 한국 바른역사이야기
  • 이덕일의 역사특강

논문 자료

HOME > 학술 이야기 > 이덕일의 역사특강

제목 2017년 6월 23일 - 「한겨레 21」, 새빨간 거짓말 보도 등록일 2017.09.27 19:00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1525

‘드디어 나왔군요, 역시…’ 「한겨레 21」에서 특집 형태로 보도한 “권력과 사이비 역사가 쓴 ‘고대사 침탈사’”를 보고 한 지인이 한 말이다. 도종환 의원이 문체부 장관으로 지명되었을 때 그간 식민사학을 비판해왔던 사람들의 예상대로 카르텔 언론이 움직였다. 6월 1일 「조선일보」, 6월 5일 「한국일보」, 6월 6일 「경향신문」……. 그 다음은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에는 이들 3개 신문에 뒤질 수 없다는 보도 태도를 견지했던 「한겨레」가 나올 차례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6월 7일 도종환 후보자 인터뷰를 보도했다. 도종환 의원과 이른바 강단사학계를 싸움 붙이는 인터뷰였는데, 나중 알고 보니 한참 전에 인터뷰한 것을 이때 보도한 것이란다. 그래도 이 보도는 그간 했던 것과는 조금 달리 일방적으로 식민사관편만 든 청부기사는 아닌듯했기에 「한겨레」가 조선총독부 역사관 옹호에서 한 발 뺐나 했더니 역시……라는 이야기였다. 
그중 한 제목이 재미있다. ‘진료는 의사에게 역사는 역사학자에게’ 「한겨레」 폐간 선언문인 줄 알았다. 이런 논리면 ‘진료는 의사에게 국회는 국회의원에게’, ‘……행정은 공무원에게’, ‘…원전은 원전전문가에게’ ‘건설은 건설회사에게’, ‘군대일은 군인에게’, ‘수사·기소는 검찰에게’‘……’ 수천 개의 이런 구호가 가능할 것이다. ‘신문은 필요 없다’ 전문가들이 다 하면 된다. 한겨레가 말하는 ‘역사학자’가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정설, 통설로 신봉하는 학자들을 뜻한다는 것은 굳이 설명도 필요없다. 

길윤형 편집장은 ‘만리재에서’라는 코너에서 '국뽕 3각연대’라고 비판했는데, 그 만리재가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혁명가들이 수감되어 고통 받던 감옥이 있던 곳인지는 아는지 모르겠다. 길윤형은 “지금까지 북한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 2600여 기의 낙랑고분이 확인됩니다. 옛 사서의 기록과 이 성과를 근거로 한국의 고대 사학자들은 대부분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인근으로 비정합니다. 이것이 ‘일군의 학자’들 눈에는 견디기 힘든 ‘식민사학’의 잔재로 비친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여러 번 언급했듯이 ‘낙랑=고대요동=하북성설’을 말하는 ‘옛 사서의 기록’은 많아도 ‘낙랑=지금의 평양’을 말하는 ‘옛 사서’는 전무하다. 있다면 길윤형이 한 번 제시해주기 바란다. 길윤형은 마치 북한에서 2600여기의 ‘낙랑군 고분’을 발굴한 결과 북한도 ‘평양=낙랑설’을 주장하는 것처럼 썼는데 완전한 조작기사다. 
북한의 역사학자 안병찬은 「평양일대 락랑유적의 발굴정형에 대하여(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조선고고연구』 1995년 제4호〔루계 97호〕)에서 이렇게 썼다.

“이 기간에 평양시 락랑구역 안에서만 하여도 2,600여기에 달하는 무덤과 수백 평방 미터의 건축지가 발굴되었으며 15,000여점에 달하는 유물들을 찾아냈다. 이것은 일제가 ‘락랑군 재평양설’을 조작하는데 자료적 기초로 이용하기 위해서 조선 강점 전 기간에 도굴한 무덤 수에 비하면 무려 26배에 달한다.”

북한에서 말하는 낙랑구역은 한나라의 식민지인 낙랑군(郡)이 아니라 최리가 국왕으로 있던 낙랑‘국(國)’을 뜻한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그 낙랑국인데, 독립왕국의 국(國)자를 식민지의 낙랑군(郡)으로 둔갑시켜놓고 독자들에게 사기 친 것이다. 북한의 주장은 2600여기의 고분을 조사했지만 그 중에 낙랑군 고분은 한 기도 없었다는 것인데, 북한에서 ‘낙랑=평양설’을 인정한 것처럼 악의적으로 뒤집어씌운 것이다. 식민사학에 빠지면 학자고 언론인이고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조에 따르면 최씨 낙랑국은 서기 32년에 망했는데, 국내 식민사학계는 서기 313년까지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완전히 다른 내용을 같은 것처럼 덮어씌워 독자들에게 사기 친 것이다. 유신, 5공 때 용공조작 수법의 완벽한 부활이다. 

게다가 이들 카르텔 언론은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이 정치권력에 의해서 중단되었다고만 두루뭉술하게 말할 뿐 이 지도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역시 여러 번 말한 내용이지만 동북아역사지도는 북한 강역을 모두 중국에 넘겼고, 4세기에도 한반도 남부에는 신라, 백제, 가야가 없었다고 지웠다. 반면 이보다 이른 3세기에 일본 열도에는 열도의 반 가까이를 통일한 야마토정권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그려 놨다. 그래야 야마토왜가 한반도 남부에 진출해 임나일본부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독도를 일관되게 삭제했다. 5개월간의 수정기한을 주면서 다시 그려오라고 했는데도 독도를 그려오지 않았다. 동북아역사재단 최고위층은 나에게 그 5개월간의 수정 기한 동안 지도 책임자들을 불러서 “대한민국 국민세금으로 만드는 지도니 독도는 꼭 그려 와라. 점이라도 찍어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도는 그려오지 않았다. 독도는 일본 강역이라는 것이 이 매국사학자들의 일관된 신념인데, 「한겨레 21」도 독도는 일본 것이라는 주장인가? 

길윤형은 “정치인과 유사역사학의 결합에 결정적으로 힘을 보탠 것은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면서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비난하고 나섰다. 대종교 같은 항일민족종교를 유사종교로 매도했던 것이나 독립운동가 후손을 매도하는 것이나 어쩜 그렇게 조선총독부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방식을 빼다 닮았는지. 그러면 이회영 선생의 손자가 이회영 선생의 항일역사관을 계승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한겨레 21」처럼 ‘조선총독부 역사관 만세!’를 외쳐대겠나? 길윤형은 그러면서 “이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신성불가침의 ‘국뽕 3각연대’가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2008년부터 진행되던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폐기했습니다. 이 사업에 참여한 학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라고 끝을 맺었다. 내가 묻고 싶다. 북한강역은 중국에 모두 넘겨주고, 4세기에도 신라, 백제, 가야를 지우고, 5개월의 수정기한을 주었음에도 독도를 그려오지 않은 동북아역사지도, 이 매국사업이 중단되었다고 거품 물고 비난하는 「한겨레 21」,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1.jpg


2.jpg


3.jpg